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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공부의 세 가지 요건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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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禪須具三要 一有大信根 二有大憤志 三有大疑情 苟闕其一 如折足之鼎 終成廢器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믿음의 뿌리요, 둘째는 크게 분발하는 뜻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다. 만약 그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끝내 못 쓰는 그릇이 되고 만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Practice requires three essentials: a great root of faith, a great resolve, and a great questioning. Lacking even one, it is like a cauldron with a broken leg — in the end, a useless vessel. 솥은 다리가 셋이라 어디에 놓아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서산 대사는 마음공부도 세 다리로 선다고 말합니다. 믿음 — 나에게도 깨어날 성품이 있다는 믿음. 분발 — 미루지 않고 오늘 해보겠다는 마음. 의심 — 다 안다고 덮지 않고 "정말 그런가?" 하고 살아 있는 물음을 품는 것. A cauldron stands steady on three legs. So does practice, says Sŏsan: faith — that the awakened nature is in you too; resolve — to begin today, not someday; questioning — refusing to file life under "already known," keeping one question alive: is it really so? 셋 중 무엇이 빠져도 공부는 기울어집니다. 믿음만 있으면 게을러지고, 분발만 있으면 조급해지고, 의심만 있으면 차가워집니다. 조선의 월창거사도 『선학입문』에서 처음 배우는 이에게 같은 것을 당부했습니다. 오늘 나의 솥은 어느 다리가 짧은지, 가만히 살펴볼 일입니다. Missing any one, the practice tips over...

[먼데이 선명상] 부처는 마음, 멀리서 찾지 말라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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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界熱惱 猶如火宅 其忍淹留 甘受長苦 欲免輪廻 莫若求佛 若欲求佛 佛即是心 心何遠覓 不離身中 삼계의 뜨거운 번뇌는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 어찌 차마 그 안에 머물며 긴 괴로움을 달게 받는가.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는 것만 한 것이 없다. 부처를 찾고자 하는가 — 부처란 곧 이 마음이다. 마음을 어찌 멀리서 찾는가. 이 몸을 떠나 있지 않다. — 지눌 『수심결』 첫머리 The burning cares of this world are like a house on fire. How can we bear to linger inside, quietly accepting so long a suffering? To leave the cycle, nothing surpasses seeking the Buddha. And if you would seek the Buddha — the Buddha is this very mind. Why search for the mind far away? It has never left this body. 『수심결』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우리는 그 안에 눌러앉아 삽니다. 걱정과 성냄과 조바심이 매일 뜨거운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익숙해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So begins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The house is on fire, yet we settle down inside it. Worry, anger, restlessness burn us daily — and strangely, we are so used to the heat that we never think of leaving. 그럼 어디로 가야 할까요. 지눌 스님의 답은 뜻밖에 가깝습니다. 나가는 문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법당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곧 이 마음이니, 멀리서 찾을수록 오히려 멀어진다고 합니다. 뜨거운 줄 아는 그 마음, 괴로운 줄 아는 그 마음이 이미 문 앞에 ...

[먼데이 선명상] 동쪽을 서쪽이라 불러도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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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人迷故 謂東爲西 方實不轉 衆生亦爾 無明迷故 謂心爲念 心實不動 마치 사람이 길을 잃어 동쪽을 서쪽이라 여겨도 방위는 실로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러하여, 무명(無明)에 미혹하여 마음을 헛된 생각이라 여기지만, 마음은 실로 움직인 적이 없다. — 『대승기신론』 본문 (원효 스님이 『대승기신론소』에서 풀이한 대목) Like a traveler who, lost, calls east "west" — yet the directions themselves never turn. So it is with us: confused, we mistake mind for its passing thoughts, yet the mind itself has never moved. 길을 잃으면 동쪽이 서쪽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헷갈려도 해 뜨는 방향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잘못된 것은 방위가 아니라 나의 봄[見]입니다. When we are lost, east looks like west. But however confused we are, the sun still rises where it rises. What went wrong is not the direction — only our seeing. 원효 스님이 풀이한 이 구절은 우리 마음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이 일고 꺼지니, 우리는 그 출렁임이 곧 나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이 아무리 출렁여도, 그 출렁임을 알아차리는 마음 바탕은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번뇌가 많은 날일수록, 그 번뇌를 비추고 있는 바탕을 한번 돌아볼 일입니다. Thoughts rise and fall dozens of times a day, and we take that churning for ourselves. Yet however the surface churns, the ground of mind that notices it has never once moved...

[먼데이 선명상] 지금 만나는 자리가 그대로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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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頓者 初緣實相 造境即中 無不眞實 원돈(圓頓)이란, 처음부터 실상(實相)을 반연하여, 어떤 경계에 이르든 그대로 중도(中道)여서 진실 아님이 없는 것이다. — 천태 『마하지관』 卷一 The perfect-and-sudden way takes reality itself as its object from the very first step: whatever situation you meet is itself the middle way — nothing is outside the truth. 수행이라고 하면 우리는 어딘가 특별한 자리를 떠올립니다. 조용한 산사, 방해받지 않는 새벽. 그런 자리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천태 스님은 첫 문장부터 다르게 말합니다. 진실은 저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바로 이 자리에 이미 와 있다고요. We imagine practice needs a special place — a quiet temple, an undisturbed dawn. Helpful, yes. But Zhiyi says from his first line: truth is not a faraway destination. It is already here, in the very situation you are meeting now. 설거지 물소리, 마음에 안 드는 말 한마디, 지루한 오후. 이런 것들은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진실이 드러나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피하지 않고 바로 보면, 어느 경계든 중도 아닌 것이 없습니다. The sound of dishwater, an unwelcome remark, a dull afternoon — not obstacles to practice, but each a door where truth shows itself. Met directly, no circumstance falls outside the middle way. 오늘의 명상 오...

[먼데이 선명상] 얻을수록 목마른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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哀哉衆生 常爲五欲所惱 而猶求之不已 此五欲者 得之轉劇 如火炙疥 슬프다, 중생이여. 늘 다섯 가지 욕망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구하기를 그치지 않는구나. 이 다섯 욕망은 얻을수록 더 심해지니, 마치 가려운 데를 불에 쬐는 것과 같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Alas, beings — forever troubled by the five desires, yet never ceasing to chase them. These desires grow fiercer the more they are fed, like scratching an itch by holding it to a fire. 가려울 때 긁으면 잠깐은 시원합니다. 그런데 긁을수록 더 가려워지지요. 용수 스님은 우리가 좇는 즐거움 —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 이 꼭 그렇다고 말합니다. 얻는 순간은 달콤한데, 얻고 나면 목마름이 오히려 커집니다. Scratching an itch feels good for a moment — and makes it itch more. Nāgārjuna says the pleasures we chase work the same way: sweet the instant we get them, thirstier the moment after. 욕심을 억지로 끊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한 번 알아차려 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좇고 있는가. 그것을 얻으면 정말 편안해지는가." 이렇게 물어보는 자리에서 선정(禪定)이 시작된다고, 『대지도론』은 좌선에 드는 첫 준비로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This is not a command to crush desire. It is an invitation to notice: What am I chasing right now — and does getting it truly bring rest? The Treatise tells this story as the fir...

[먼데이 선명상] 이 마음이 부처를 짓는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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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淨土紺珠)』 이 마음이 부처를 짓는다 — 是心作佛 원문 是心作佛, 是心是佛. 이 마음이 부처를 짓고, 이 마음이 곶 부처이다. — 『관무량수경』 (大正藏 T12 No.365) · 선정겸수 전통의 핵심 전거 쉬운 풀이 염불은 부처님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향해 부를까요? 『관무량수경』의 이 구절은 뜻밖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부처를 그리는 바로 그 마음이 부처를 짓고 있고, 그 마음이 이미 부처라고요. 허주 덕진 스님의 선정겸수(禪淨兼修)가 바로 이 자리에서 성립합니다. 참선으로 마음을 비추는 일과 염불로 부처를 그리는 일이, 결국 같은 한마음에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선과 염불은 두 길이 아니라, 한 집의 두 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 한 번을 부르는 그 순간, 부르는 마음과 불리는 부처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오늘의 명상 "나무아미타불" 열 번, 소리보다 그 소리를 내는 마음을 들으며 불러 보세요. This mind creates the Buddha; this mind is the Buddha — the Contemplation Sutra points in an unexpected direction: the very mind that longs for the Buddha is already doing the Buddha's work. Here Heoju Deokjin's union of Seon and Pure Land stands: illuminating the mind in meditation and picturing the Buddha in chanting meet in the same one mind — not two roads, but two doors of one house. Today's meditation: Recite Namu Amitabul ten times, listening les...

[먼데이 선명상] 마음 길이 끊어진 자리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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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 · 무문 혜개 『무문관(無門關)』 마음 길이 끊어진 자리 — 心路絕 원문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絕.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진 곳까지 가야 한다. — 무문 혜개 『무문관』 제1칙 평창 (大正藏 T48 No.2005) 쉬운 풀이 우리는 생각으로 답을 찾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화두는 이상합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에서 멀어집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무(無)." 이 한 글자는 생각의 길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곳에 서 있습니다. 무문 스님은 그래서 "마음 길이 끊어진 곳"이라고 했습니다. 길이 끊어지면 막막합니다. 그런데 그 막막함이 실은 문입니다. 아는 것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처음으로 비는 자리이니까요. 답이 안 나와서 답답한가요? 좋습니다. 화두는 지금 제대로 걸려 있는 중입니다. 오늘의 명상 "무(無)" 한 글자를 들고, 답을 찾지 말고 그 막막함 곁에 5분만 머물러 보세요. To practice Seon you must pass the ancestors' gate; subtle awakening comes only where the road of thinking ends — Wumen's comment on the first case. The single word Mu stands where thought cannot reach. When the road ends, we feel lost — and that very lostness is the gate. Frustrated that no answer comes? Good. The hwadu is working. Today's meditation: Hold the one word Mu for five minutes — not searching for an answe...

[먼데이 선명상] 거문고 줄 고르듯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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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 월창거사 『선학입문』 거문고 줄 고르듯 — 調絃 원문 工夫, 如調絃之法, 緊緩得其中.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는 법과 같아서, 팽팽함과 느슨함이 알맞아야 한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 H0138) 쉬운 풀이 거문고 줄을 너무 조이면 끊어지고, 너무 풀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마음공부도 꼭 그렇다고 휴정 스님은 말합니다. 너무 애쓰면 지쳐서 끊어지고, 너무 놓아버리면 게을러져 소리를 잃습니다. 명상을 시작한 분들이 자주 묻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나요?" 월창거사도 『선학입문』에서 초심자에게 같은 결의 말을 남겼습니다. 급하게 이루려는 마음이 오히려 길을 막는다고요. 알맞은 줄은 어떻게 찾을까요? 소리를 들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내 마음의 소리는 너무 팽팽한가요, 너무 느슨한가요. 오늘의 물음 지금 나의 줄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나요? Practice is like tuning a string, says Seosan Hyujeong: too tight and it snaps, too loose and it makes no sound. How hard should I practice? — beginners often ask. The hurried heart itself blocks the way. The only way to find the right tension is to listen. Is your string too tight today, or too loose? Today's question: Which way is your string leaning right now?

[먼데이 선명상] 바람은 멎어도 물결은 남아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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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보조 지눌 『수심결(修心訣)』 바람은 멎어도 물결은 남아 — 頓悟漸修 원문 頓悟雖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의 습기는 깊다. 바람은 멎어도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드러나도 망념이 여전히 침노한다. — 지눌 『수심결』에 인용된 게송 (韓佛全 4 · H0068) 쉬운 풀이 호수에 바람이 그쳐도 물결은 한동안 출렁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 알아차린 순간이 있어도, 오래된 습관은 며칠이고 다시 고개를 듭니다. 지눌 스님은 그것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깨친 뒤에도 천천히 닦아 가는 것입니다. 물결이 잦아들 때까지 호수 곁을 떠나지 않는 일, 그것이 수행입니다. 오늘 같은 실수를 또 했더라도 자책 대신 이렇게 말해 보세요. "바람은 멎었고, 물결이 잦아드는 중이다." 오늘의 명상 숨을 고르며 3분, 출렁이는 물결이 저절로 잦아드는 것을 지켜보세요. 가라앉히려 하지 말고요. When the wind stops, the waves still roll for a while — a verse Jinul quotes in Susimgyeol. A moment of clear seeing does not erase old habits overnight, and Jinul never called that failure. Practice is simply staying by the lake until the water settles. If you repeated the same mistake today, try saying: the wind has stopped; the waves are settling. Today's meditation: For three minutes, watch the waves settle by themselves — witho...

[먼데이 선명상] 펼치면 한량없고, 합하면 한마음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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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펼치면 한량없고, 합하면 한마음 — 開合 원문 開則無量無邊之義爲宗, 合則二門一心之法爲要. 펼치면 한량없고 가없는 뜻이 종(宗)이 되고, 합하면 두 문과 한마음의 법이 요체가 된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 서문 (大正藏 T44 No.1844) 쉬운 풀이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이 일어나 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원효 스님은 그 수천 갈래가 결국 하나의 마음으로 모인다고 말합니다. 펼치면 한없이 많고, 접으면 단 하나. 부채를 떠올려 보세요. 활짝 펴면 수십 개의 살이 제각각 뻗어 있지만, 접으면 손안에 쏙 들어오는 하나입니다. 많음과 하나가 다투지 않습니다. 복잡한 날일수록, 그 많은 생각이 돌아갈 자리가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면 어떨까요. 오늘의 물음 오늘 일어난 그 많은 생각들은, 어디에서 일어났다가 어디로 돌아가나요? Unfolded, the mind's meanings are boundless; folded, they are one mind with two gates — so writes Wonhyo. Like a fan: spread open, dozens of ribs point in every direction; folded, it rests in one hand. The many and the one do not quarrel. On a tangled day, remember that all those thoughts have a single place to return to. Today's question: Where do today's many thoughts arise from, and where do they return?

[먼데이 선명상] 한 빛깔 한 향기에도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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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摩訶止觀)』 한 빛깔 한 향기에도 — 一色一香 원문 一色一香, 無非中道. 한 빛깔, 한 향기도 중도 아님이 없다. — 천태 지의 『마하지관』 卷一 (大正藏 T46 No.1911) 쉬운 풀이 길가의 풀 한 포기, 찻잔에서 올라오는 향 한 줄기. 천태 스님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진리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어디 멀리, 높은 곳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주 특별한 것을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런데 멈추어(止) 바라보면(觀), 늘 보던 것들이 처음 보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어제도 지나쳤던 창밖의 빛깔이, 오늘 아침에는 문득 새롭습니다.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눈에 들어오는 첫 빛깔 하나를, 이름 붙이지 말고 3분만 바라보세요. One color, one fragrance — none of it is outside the Middle Way, says Zhiyi. Truth is not far away in some high place. When we stop and look, the most ordinary things arrive as if for the first time. What changed is not the world, but the mind that sees it. Today's meditation: Take the first color that meets your eyes today, and simply watch it for three minutes, without naming it.

[먼데이 선명상] 지혜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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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大智度論)』 지혜는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 — 般若 원문 般若波羅蜜, 是諸佛母.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이다. — 용수 『대지도론』 (大正藏 T25 No.1509) 쉬운 풀이 부처님도 어머니가 있을까요? 용수 스님은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가 바로 그 어머니라고요. 어머니가 아이를 낳고 기르듯, 지혜가 깨달음을 낳고 기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책을 많이 읽어서 얻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천천히 자라나는 밝음입니다. 그래서 선정과 지혜는 늘 함께 갑니다. 고요해야 밝아지고, 밝아야 더 고요해집니다. 오늘 아침, 무언가를 더 배우려 하기보다 잠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 고요 속에서 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의 물음 지금 내 마음을 낳고 기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Prajñā-pāramitā is the mother of all buddhas, says Nāgārjuna. Not knowledge gathered from books, but the brightness that grows when we sit quietly and watch the mind as it is. Stillness deepens wisdom; wisdom deepens stillness. This morning, instead of learning one more thing, try a moment of learning nothing at all. Today's question: What is it that gives birth to your mind right now?

[먼데이 선명상] 제 성품이 곧 아미타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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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성품이 곧 아미타 — 自性彌陀, 唯心淨土 自性彌陀,唯心淨土。 제 성품이 곧 아미타(彌陀)요, 오직 이 마음이 정토(淨土)다. — 선정겸수(禪淨兼修) 전통의 핵심 명제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가 잇는 가르침 쉬운 풀이 지난 세 주 자서 게송·사료간·아미타경 일심불란으로 선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보았지요. 오늘은 그 둘을 하나로 꿰는 한마디를 봅니다. "제 성품이 곧 아미타요, 오직 마음이 정토다." 아미타부처님도, 서방 정토도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에요. 부처의 성품은 내 마음의 본래 밝음이고, 맑은 정토는 지금 이 마음이 고요해진 자리라는 것. 그래서 허주 덕진 스님 같은 선사가 염불을 권할 수 있었어요. 밖의 부처를 부르는 그 소리가, 실은 안의 성품을 깨우는 소리니까요. 나무아미타불 한 소리가 곧 내 마음자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의 작은 모음을 나 혼자 갖지 않고, 곁의 한 사람에게 가만히 돌려 비춥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숨을 쉬며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그 소리가 밖이 아니라 내 마음 한가운데를 부른다고 여겨 보세요. 마지막에, 이 고요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가만히 보내 주세요. English "Amitābha is one's own nature; the Pure Land is only this mind." — a core maxim of the joint cultivation of Seon and Pure Land, the teaching carried on by Deokjin's Jeongto Gamju (H0288) The past three weeks — the self-preface verse, the Four Alternatives, and one-mind-undistracted from the Amitābha Sūtra — showed that Seon and recitation...

[먼데이 선명상] 온몸으로 의심덩어리를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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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으로 의심덩어리를 — 起箇疑團 將三百六十骨節,八萬四千毫竅,通身起箇疑團,參箇無字。 온몸의 삼백육십 뼈마디와 팔만사천 털구멍을 다하여, 온몸으로 하나의 의심덩어리(疑團)를 일으켜, 이 '무(無)'자를 참구하라. — 무문 혜개, 『무문관(無門關)』 제1칙 평창, 『간화선 입문』이 다루는 참구법 쉬운 풀이 지난 세 주는 '무(無)'와 '뜰 앞의 잣나무', '판치생모'를 만났지요. 오늘은 그 화두를 '어떻게' 드는지를 봅니다. 무문 스님은 말해요. 머리로만 굴리지 말고, 온몸의 뼈마디와 털구멍을 다해 하나의 의심덩어리(疑團)를 일으키라고. 이 말이 다정한 건, 화두가 생각으로 푸는 수수께끼가 아님을 알려 주기 때문이에요. 답을 궁리하는 게 아니라, "이게 뭐지?" 하는 막막함 하나가 온몸에 가득 차는 것 — 그 뭉친 의심 자체가 이미 수행입니다. 잘 풀렸는지 못 풀렸는지 따질 것 없어요. 온몸으로 궁금해하는 그 상태면 충분합니다. 오늘의 명상 '무(無)' 한 글자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께에 둔다고 여기며, 온몸으로 "이게 뭐지?" 하고 한 번 물어봅니다. 답을 찾지 말고, 그 궁금함이 온몸에 퍼지도록 한 호흡 두어 보세요. English "With all three hundred sixty bones and joints, all eighty-four thousand pores, rouse your whole body into a single mass of doubt, and take up this word 'No.'" — Wumen Huikai, commentary on Case 1 of The Gateless Gate The past three weeks we met "No," "the cypress in the garden," and "the ...

[먼데이 선명상]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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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 有一物於此 有一物於此,從本以來,昭昭靈靈,不曾生不曾滅,名不得狀不得。 여기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또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으며, 이름 붙일 수도 그려낼 수도 없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첫 구절 쉬운 풀이 이 구절은 『선가귀감』이 문을 여는 그 유명한 첫마디예요. '한 물건(一物)' — 청허 스님은 우리 안의 본래 마음을 이렇게 부릅니다. 물건이라 했지만 손에 쥐는 것이 아니에요. 본래부터 밝고 신령하여,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고, 이름도 모양도 붙일 수 없는 그것. 이름 붙일 수 없다니 막막하지요?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름과 모양에 갇히지 않는 무언가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말이에요. 오늘 그 '한 물건'이 무엇인지 풀어 알 것 없어요. 다만 이름 붙기 전, 생각이 일기 전의 그 밝은 자리를 슬쩍 엿보면 됩니다. 배경으로 함께 읽는 월창거사 『선학입문』도 이 자리로 드는 문을 안내합니다. [선학입문 원문 인용은 확인 후 추가] 오늘의 명상 생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 아무 이름도 붙지 않은 그 한순간을 가만히 엿봅니다. 알아내려 하지 말고, 이름 붙기 전 그 밝음을 한 호흡 그대로 두어 보세요. English "There is one thing here: from the very beginning bright and spirit-like, never born and never dying, that cannot be named or depicted." — Cheongheo Hyujeong, opening of Mirror of the Seon School This is the famous first line that opens the Mirror of the Seon School. "One thing" — Cheongheo's name for the original mind ...

[먼데이 선명상] 제 안의 신령함을 저버리지 말라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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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안의 신령함을 저버리지 말라 — 莫負己靈 願諸修道之人,各自照顧,莫負己靈。 바라노니, 도를 닦는 이들이여, 저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 자기 안의 신령함(己靈)을 저버리지 마시라. — 지눌 『수심결(修心訣)』 맺음말 (韓佛全 4) 쉬운 풀이 지난주 '텅 비었으나 신령히 아는(空寂靈知)' 마음을 보았지요. 오늘은 지눌 스님이 『수심결』을 마치며 남긴 마지막 당부를 봅니다. 화려한 결론이 아니라, 나직한 부탁 한마디예요. "저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 자기 안의 신령함을 저버리지 말라." 여기서 '저버리지 말라'는 건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 아니에요. 이미 네 안에 있는 그 밝은 앎을, 밖에서 딴 걸 찾느라 잊지만 말라는 것. 없는 걸 만들라는 게 아니라, 있는 걸 지나치지 말라는 다정한 당부입니다. 오늘의 명상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있는 그 앎에 가만히 인사합니다. 밖에서 찾던 눈을 잠깐 안으로 돌려, 이미 여기 있는 밝음을 한 호흡 저버리지 말아 보세요. English "I pray all who cultivate the Way: each look back upon yourself, and do not forsake your own spirit." — Jinul, closing of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Last week we met the mind of "empty stillness, luminous knowing." Today, the last words Jinul left as he closed the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 not a grand conclusion, but a quiet request: each look back upon yourself, and do not forsake the spirit within you. "Do not...

[먼데이 선명상] 한 마음에 두 문이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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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음에 두 문이 — 一心二門 依一心法有二種門。云何為二?一者心眞如門,二者心生滅門。 한 마음의 법에 두 가지 문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하나는 마음의 참된 그대로인 문(心眞如門)이요, 둘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문(心生滅門)이다. — 『대승기신론』, 원효 『소』 주석 쉬운 풀이 지난주 '생각을 여의면 경계도 없다'를 보았다면, 오늘은 그 한 마음에 왜 두 얼굴이 있는지를 봅니다. 원효 스님이 풀이한 『기신론』은 말합니다. 한 마음에 두 문이 있다고. 하나는 본래 그대로 고요한 문(진여문), 하나는 출렁이며 일어났다 사라지는 문(생멸문). 중요한 건 이 둘이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아니라는 거예요. 파도가 아무리 쳐도 물은 하나이듯, 출렁이는 이 마음과 본래 고요한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그러니 출렁임을 없애야 고요가 오는 게 아니라, 출렁이는 그 자리가 이미 고요한 물이에요. 오늘의 명상 마음이 지금 출렁이고 있다면, 그것을 가라앉히려 하지 마세요. 파도 아래 잠긴 고요한 물을 떠올리며, 출렁임과 고요가 한 물임을 한 호흡 느껴 봅니다. English "Grounded in the one mind, there are two gates. What are the two? First, the gate of mind as suchness; second, the gate of mind as arising-and-ceasing." —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with Wonhyo's Commentary Last week: free of deluded thought, no realm remains. Today, why that one mind wears two faces. The Awakening of Faith, as Wonhyo explains it, says the one mind has two gates — one still and just-as-it-is (suchnes...

[먼데이 선명상] 밝고 고요함, 앞서 없던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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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고 고요함, 앞서 없던 — 止觀明靜 止觀明靜,前代未聞。 지관(止觀)의 밝고 고요함은, 앞선 시대에 미처 듣지 못한 것이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첫머리(序) 쉬운 풀이 『마하지관』은 이 한마디로 문을 엽니다. '멈춤(止)과 봄(觀)의 밝고 고요함' — 그게 얼마나 놀라운지 앞 시대엔 들어본 적 없다고요. 그런데 이 놀라운 것이 저 멀리 있지 않아요. 멈춤은 마음이 잠깐 쉬는 것, 봄은 그 쉼 속에서 또렷이 지켜보는 것. 둘은 따로가 아니라 한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시끄러운 마음이 잠깐 멈추면, 그 자리가 저절로 밝아지고 고요해져요. 대단한 걸 새로 배울 게 아니라, 지금 한 번 멈춰 보는 것 — 그 안에 벌써 밝음과 고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숨 한 번을 그냥 쉽니다. 멈춘 그 자리가 어두운지 밝은지, 시끄러운지 고요한지 — 판단하지 말고 한 호흡 가만히 지켜보세요. English "The clarity and stillness of śamatha-vipaśyanā (stopping and seeing) was not heard of in former ages." — Zhiyi, opening of The Great Treatise on Śamatha-Vipaśyanā The Mohe Zhiguan opens with this single line: the clarity and stillness of stopping and seeing is so remarkable it was unheard of in earlier ages. Yet this remarkable thing is not far away. Stopping is the mind resting for a moment; seeing is watching clearly within that rest. The two aren't separate — they arise in one place. When a...

[먼데이 선명상] 선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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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 — 禪為守智藏 禪為守智藏,功德之福田;禪為清淨水,能洗諸欲塵。 선(禪)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이요, 공덕을 기르는 복밭이며; 선은 맑고 깨끗한 물이라, 온갖 욕망의 티끌을 씻어낸다. — 용수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禪波羅蜜)」 (大正藏 T25 No.1509) 쉬운 풀이 지난주엔 참선에 들기 전 다섯 덮개를 내려놓는 이야기를 보았지요. 오늘은 그 참선(禪)이 우리에게 무엇이 되어 주는지를 봅니다. 용수 스님은 선을 세 가지에 빗댔어요. 지혜를 고이 지켜 주는 곳간, 복이 자라는 밭, 그리고 티끌을 씻는 맑은 물. 셋 다 애써 무언가를 만드는 그림이 아니에요. 곳간은 이미 있는 것을 지키고, 밭은 심은 것을 기르며, 물은 그저 흐르며 씻어냅니다. 고요히 앉는 그 한 자리가, 나도 모르게 나를 지키고 기르고 씻어 주고 있다는 말이에요. 오늘의 명상 잠깐 앉아, 숨이 들고 나는 것만 지켜봅니다. 무엇을 씻어내려 애쓰지 말고, 맑은 물이 저 혼자 흐르듯 — 그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한 호흡 느껴 보세요. English "Dhyāna is the treasury that guards wisdom, the field of merit; dhyāna is pure water that washes away the dust of every desire." — Nāgārjuna,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on the Dhyāna Pāramitā Last week we set down the five hindrances before sitting. Today, what that sitting quietly becomes for us. Nāgārjuna likened dhyāna to three things: a treasury that keeps wisdom safe, a field where merit grows, clear water that rinses away dust. ...

[먼데이 선명상] 한마음 흐트러지지 않게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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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흐트러지지 않게 — 一心不亂 원문 執持名號,若一日、若二日……若七日,一心不亂。 부처님의 이름을 잡아 지니되, 하루나 이틀……또는 이레 동안, 한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 『아미타경』 — 정토 신행의 핵심 근거, 덕진 『정토감주』(H0288)가 엮어 담은 가르침 쉬운 풀이 지난 두 주 자서(自叙) 게송과 사료간으로 선정겸수를 보았다면, 오늘은 그 뿌리인 『아미타경』으로 돌아갑니다. 염불의 요체는 복잡한 게 아니에요. 한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一心不亂) — 그뿐입니다. 여기서 ‘하루, 이틀, 이레’는 시간을 채우라는 뜻이 아니라, 짧아도 좋으니 그 순간만은 한 소리에 마음이 온전히 모이라는 말이에요. 허주 덕진 스님이 선사이면서도 염불을 권한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화두를 참구하는 그 ‘한마음’과, 염불하는 이 ‘한마음’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의 작은 모음을 나 혼자 갖지 않고, 곁의 한 사람에게 가만히 돌려 비춥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숨을 쉬며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소리가 흩어지지 않고 한자리에 모이는 것을 느껴 보세요. 마지막에, 이 고요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가만히 보내 주세요.   “Holding fast to the Name — for one day, two days… up to seven days — with one mind undistracted.” — The Amitābha Sūtra, the root teaching gathered into Deokjin’s Jeongto Gamju (H0288) The past two weeks we sat with Deokjin’s self-preface verse and the “Four Alternatives”; today we return to their root, the Amitābha Sūtra. The heart of recitation isn’t complicated — one mind, undistracted. That’s a...

[먼데이 선명상] 판자 이빨에 털이 나다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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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 이빨에 털이 나다 — 板齒生毛 원문 僧問趙州,如何是祖師西來意。州云,板齒生毛。 한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답했다. “판자 이빨에 털이 났다.” — 조주 선사 공안, 『간화선 입문』에서 다루는 대표 화두 쉬운 풀이 지난 두 주는 ‘무(無)’와 ‘뜰 앞의 잣나무’를 보았지요. 오늘은 또 다른 조주 스님의 답, “판치생모(板齒生毛)”입니다. 앞니에 털이 났다니 — 뜻으로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답이에요. 바로 그 풀리지 않음이 화두입니다. 말이 되는 답을 찾으려 하면 화두는 도리어 멀어져요. “왜 하필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그 막막함 하나를 그대로 품는 것 — 그것이 간화선입니다. 오늘의 명상 “판치생모” 네 글자를 마음속으로 가만히 들어 봅니다. 뜻을 풀려 하지 말고, 그 막막함 하나를 한 호흡 그대로 품어 보세요.   “A monk asked Zhaozhou, ‘What is the meaning of the Patriarch’s coming from the West?’ Zhaozhou said, ‘The wooden tooth grows hair.’” — Zhaozhou’s gong’an, a classic case in Ganhwa Seon practice The past two weeks we sat with “No” and “the cypress in the garden.” Today, another of Zhaozhou’s answers: “the wooden tooth grows hair.” A front tooth sprouting hair makes no sense at all as an answer. That very unresolvability is the hwadu. Reaching for a sensible answer only pushes it further away. Simply holding the bafflement itself — “why on earth would ...

[먼데이 선명상] 화두를 품는 마음 — 청허 휴정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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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를 품는 마음 — 如猫捕鼠, 如鷄抱卵 원문 千疑萬疑,只是一疑。如猫捕鼠,如鷄抱卵。 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이 다만 하나의 의심이다. 고양이가 쥐를 잡듯, 닭이 알을 품듯.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쉬운 풀이 이번 주부터는 청허 스님의 『선가귀감』과 함께, 월창거사 김대현의 『선학입문』도 곁들여 살펴보려 합니다. 『선학입문』은 대중을 위해 천태 지의의 『석선바라밀차제법문』을 쉽게 간추린 입문서예요. 그러니 이번 주 월요일 대지도론의 ‘선바라밀(禪波羅蜜)’과도 은근히 이어져 있습니다. 오늘 원문은 화두를 품는 마음가짐에 대한 선가귀감의 유명한 비유예요. 천 가지 만 가지로 보여도 결국 하나의 의심일 뿐이고, 그 의심은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닭이 알을 품듯 — 놓치지 않되 애쓰지 않는 마음입니다. 오늘의 명상 닭이 알을 품듯, 지금 숨 하나를 가만히 품어 봅니다. 잡으려 조이지도, 놓아 잊지도 말고, 그저 품은 채 한 호흡 머무세요.   “A thousand doubts, ten thousand doubts, are just one doubt — like a cat stalking a mouse, like a hen brooding her egg.” — Cheongheo Hyujeong, Mirror of the Seon School From this week, alongside Cheongheo’s Mirror of the Seon School, we also draw on Wolchang-geosa Kim Dae-hyeon’s Introduction to Seon Studies — a layperson’s digest of Zhiyi’s Sequential Dharma-Gate of the Dhyāna Pāramitā. Today’s line is the Mirror’s famous image for how to hold a hwadu: however many the doubts seem, they are only one doubt ...

[먼데이 선명상] 텅 비었으나 신령히 아는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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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었으나 신령히 아는 — 空寂靈知 원문 諸法皆空之處,靈知不昧,卽此空寂靈知之心,是汝本來面目。 모든 법이 다 빈 그 자리에, 신령한 앎은 어둡지 않으니, 이 텅 비었으나 신령히 아는(空寂靈知)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이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쉬운 풀이 지난주 정혜쌍수(定慧雙修)를 보았다면, 오늘은 그 둘이 만나는 자리 이름을 봅니다. 공적영지(空寂靈知) — 텅 비어 고요하지만(空寂), 그 안에 신령한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는 것. ‘텅 비었다’는 말에 허무해할 것 없어요. 비었으되 캄캄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빈자리에서 또렷이 알아차립니다. 지눌 스님은 이 자리가 멀리 있지 않고, 지금 이 마음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명상 눈을 감고, 마음이 비어 있음을 느껴 봅니다. 그 빈자리가 캄캄하지 않고 도리어 또렷함을, 한 호흡 가만히 느껴 보세요.   “Where all things are empty, luminous knowing is not obscured — this mind of empty stillness and luminous knowing is your original face.”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Last week we saw the joint cultivation of stillness and insight; today, the name for where they meet: empty stillness, luminous knowing. Don’t despair at the word “empty” — empty here isn’t dark, but the very place where clear knowing shines. Jinul said this place isn’t far away; this very mind, right now, is it. Close your eyes and feel the mind’s emptine...

[먼데이 선명상] 생각을 여의면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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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心性不生不滅,一切諸法唯依妄念而有差別,若離妄念則無一切境界之相。 마음의 성품은 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니, 모든 법은 오직 헛된 생각(妄念)에 의해 차별이 있을 뿐이요, 헛된 생각을 여의면 온갖 경계의 모습도 없다. — 『대승기신론』 心眞如 장, 원효 『소』 주석 쉬운 풀이 지난주 '한 마음이 곧 중생의 마음'을 보았다면, 오늘은 그 마음이 왜 시끄러워 보이는지를 봅니다. 원효 스님은 답합니다. 세상이 복잡해 보이는 건 세상 탓이 아니라, 생각이 나누어 보기 때문이라고. 좋다·나쁘다, 크다·작다 — 이 모든 구별은 생각이 그어 놓은 금이에요. 그 금을 잠깐 내려놓으면, 나눌 것도 다툴 것도 본래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애쓸 것 없이, 그저 지금 이 생각 하나를 가만히 내려놓으면 됩니다. 오늘의 명상 지금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에 붙은 '좋다/싫다'라는 이름표를 살짝 떼어 봅니다. 이름표를 떼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한 호흡 가만히 봅니다.   "The nature of mind neither arises nor ceases; all things have distinctions only because of deluded thought. Free of deluded thought, there is no mark of any realm at all." —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with Wonhyo's Commentary Last week we saw the one mind that is the mind of all beings; today, why that mind seems so noisy. Wonhyo answers: the world isn't complicated because of the world — it's complicated because thought divides it. Good and bad, big and small — ...

[먼데이 선명상] 한 생각 안에 온 우주가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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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摩訶止觀)』 한 생각 안에 온 우주가 — 一念三千 원문 此三千在一念心。若無心而已,介爾有心,即具三千。 이 삼천(三千) 세계가 한 생각 마음에 있다. 마음이 없으면 그만이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마음이 있으면 곧 삼천을 다 갖춘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卷五上 (大正藏 T46 No.1911) 쉬운 풀이 지난주엔 '고요하며 늘 비춘다'는 지관의 뜻을 보았지요. 오늘은 한 걸음 더, 그 한 생각이 얼마나 큰지를 봅니다. 천태 스님은 지금 이 순간의 아주 작은 생각 하나에 온 우주(三千世界)가 다 들어 있다고 했어요. 거창하게 들리지만 뜻은 단순해요. 지금 이 한 생각을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것. 대단한 깨달음을 따로 찾을 것 없이, 지금 이 순간의 마음자리 가 이미 전부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명상 지금 떠오르는 생각 하나, 아무리 작아도 좋으니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것을 밀어내지도 붙잡지도 말고, "이 안에 다 있구나" 하고 한 호흡 머물러 보세요. "These three thousand realms are in a single moment of mind. If there is no mind, that is all; but if mind arises even for an instant, the three thousand are complete within it." — Zhiyi, The Great Treatise on Śamatha-Vipaśyanā, fasc. 5 (Taishō T46, No.1911) Last week we saw stillness that ever illumines. Today, one step further: how vast that one thought really is. Master Zhiyi said the whole universe of three thousand realms is cont...

[먼데이 선명상] 다섯 덮개를 내려놓으면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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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大智度論)』 다섯 덮개를 내려놓으면 — 오개(五蓋) 원문 棄是五蓋,譬如負債得脫,重病得差,飢餓之地得至豐國,如從獄得出,如於惡賊中得自免濟,安隱無患。 이 다섯 덮개를 내려놓는 것은, 빚을 다 갚은 것 같고, 큰 병이 나은 것 같고, 굶주린 땅에서 풍요한 나라에 이른 것 같고, 감옥에서 풀려난 것 같고, 나쁜 도적 무리에서 스스로 벗어난 것과 같아 — 편안하고 근심이 없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禪波羅蜜)」 (大正藏 T25 No.1509, p.0185a) 쉬운 풀이 마음은 본래 해와 달처럼 밝습니다. 그런데 그 빛을 가리는 다섯 가지가 있어요. 욕심(貪)·성냄(瞋)·졸음(睡眠)·들뜸과 뉘우침(掉悔)·의심(疑) — 이 다섯을 '덮개(蓋)'라 부릅니다. 용수 스님은 참선에 들기 전 이 다섯 덮개를 잠시 내려놓으라 했어요. 그런데 그 내려놓음을 설명하는 말이 참 다정합니다. 빚을 갚은 것 같고, 아픈 몸이 나은 것 같고, 굶주리다 풍요한 나라에 닿은 것 같다고요. 무언가를 새로 얻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이미 있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을 뿐인데, 그게 곧 편안함입니다. 그러니 오늘 애써 좋은 마음을 만들 것 없어요. 무거운 것 하나만 슬며시 내려놓아도, 그 자리가 벌써 쉼입니다. 오늘의 명상 지금 내 마음 위엔 어떤 덮개가 있나요? 욕심인가, 성냄인가, 졸음인가, 들뜸인가, 의심인가. 딱 하나만 가만히 이름 붙여 보세요 — "아, 이거구나." 그리고 한 호흡 동안, 살며시 내려놓습니다. "Setting down these five hindrances is like being freed from debt, cured of grave illness, reaching a land of plenty from famine, released from prison, escaping bandits on one's own — at ...

[먼데이 선명상] 선도 정토도 함께 — 선정겸수(禪淨兼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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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淨土紺珠)』 선도 있고 정토도 있으면 — 선정겸수(禪淨兼修) 원문 (선정겸수 전통의 표어 — 전통적으로 영명 연수에 귀속) 有禪有淨土,猶如戴角虎。 선(禪)도 있고 정토(淨土)도 있으면, 뿔 달린 호랑이와 같다. — 「선정사료간(禪淨四料簡)」. 전통적으로 영명 연수에 귀속되나, 현존 최초 출전은 元 천여유칙 『정토혹문(淨土或問)』. 덕진 『정토감주』가 잇는 선정겸수의 흐름. 쉬운 풀이 허주 덕진 스님(1815~1888)이 대중에게 염불을 권한 바탕에는 오래된 가르침이 있어요. 전통적으로 송나라 영명 연수 선사에게 돌려지는 유명한 구절입니다(이 표어 자체는 후대 정토 문헌에 처음 보입니다). 선과 정토를 함께 갖추면, 뿔 달린 호랑이처럼 든든하다 는 것. 선(禪)은 내 마음을 곧장 보는 힘이고, 정토(염불)는 그 마음을 한 소리에 모아 의지하는 길이에요. 덕진 스님은 이 둘이 다투지 않고 서로를 받쳐 준다고 보았습니다(선정겸수). 그러니 염불은 선의 '아래 단계'가 아니라, 선의 또렷함에 호랑이의 뿔을 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의 작은 공부를 나 혼자 갖지 않고, 곁의 한 사람에게 돌려 비추는 것. 화요명상에서 늘 말씀드리듯, 수행의 향기는 끝내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숨을 쉬며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그 한 소리에 마음을 모으되(정토), 부르는 '나'를 또렷이 지켜보세요(선). 마지막에, 이 고요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가만히 보내 주세요. "To have Seon and also the Pure Land is like a tiger with horns." — "Four Alternatives" (traditionally attributed to Yongming Yanshou; its earliest extant source is...

[먼데이 선명상] 뜰 앞의 잣나무 — 조주의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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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 · 『선학입문』 뜰 앞의 잣나무 — 庭前柏樹子 원문 趙州因僧問,如何是祖師西來意。州云,庭前柏樹子。 조주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 『무문관(無門關)』 제37칙 〈庭前柏樹〉 (大正藏 T48, 2005) 쉬운 풀이 달마 스님이 서쪽에서 온 뜻, 곧 불법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큰 물음에 조주 스님은 엉뚱하게 답합니다. "뜰 앞의 잣나무." 깊은 도리를 물었는데 눈앞의 나무 한 그루라니요. 바로 여기서 의심(疑情)이 일어납니다. "왜 하필 잣나무지?" 머리로 풀리지 않는 이 답답함이 화두예요. 조주 스님은 멀리 있는 진리를 끌어오지 않고, 지금 눈앞 그 자리 를 그대로 들어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답을 맞히려 말고, 그 물음을 품으세요. 오늘의 명상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물 하나에 시선을 둡니다. "이것이 바로 그 뜻인가?" 설명하려 말고, 그 잔잔한 의심 하나만 한 호흡 가만히 품어 보세요. "A monk asked Zhaozhou, 'What is the meaning of the Patriarch's coming from the West?' Zhaozhou said, 'The cypress tree in front of the garden.'" — Gateless Gate, Case 37 Asked the great question—the very heart of the Dharma—Zhaozhou answers oddly: "The cypress in the garden." Right here the doubt-sensation arises: "Why a cypress?" This unresolvable pre...

[먼데이 선명상] 선은 마음, 교는 말씀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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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선은 부처의 마음, 교는 부처의 말씀 — 禪敎 원문 禪是佛心,敎是佛語。 선(禪)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의 말씀이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쉬운 풀이 서산대사 청허 스님은 선과 교의 관계를 두 마디로 정리합니다. 선은 부처의 마음, 교는 부처의 말씀. 경전(말씀)으로 길을 배우고, 참선(마음)으로 그 자리에 곧장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둘은 다투는 사이가 아니라 한 부처의 안과 밖이에요. 다만 청허 스님은 말에 머물지 말라 당부합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만 보면 안 되듯, 말씀을 발판 삼아 끝내는 말 이전의 마음자리 로 돌아오라는 것. 오늘의 명상 좋아하는 경전 한 구절을 떠올려 봅니다. 그 뜻을 곱씹다가, 슬며시 말을 내려놓고 — 그 말이 가리키던 고요한 마음 한 자리에 한 호흡 머무세요. "Seon is the Buddha's mind; the teachings are the Buddha's words." — Cheongheo Hyujeong, Mirror of the Seon School Master Cheongheo—Seosan—sums up the relation of meditation and scripture: Seon is the Buddha's mind, the teachings are the Buddha's words. We learn the road through scripture and enter the place directly through meditation. The two don't quarrel; they are the inside and outside of one Buddha. Yet he warns us not to camp out in words: as a finger points at the moon, look at...

[먼데이 선명상] 고요하고 또렷하게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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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보조 지눌 『수심결(修心訣)』 정은 본체, 혜는 작용 — 定慧雙修 원문 定是體,慧是用也。卽體之用故,慧不離定;卽用之體故,定不離慧。定則慧故,寂而常知;慧則定故,知而常寂。 정(定)은 본체요, 혜(慧)는 작용이다. 본체에 즉한 작용이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에 즉한 본체이므로 정이 혜를 떠나지 않는다. 정이 곧 혜이므로 고요하되 늘 알고, 혜가 곧 정이므로 알되 늘 고요하다. — 보조 지눌, 『수심결(修心訣)』 (韓佛全 4, 711c) 쉬운 풀이 지눌 스님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한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고요함(定)과 또렷함(慧)은 둘이 아니라, 한 마음의 본체와 작용 이라는 것. 그래서 고요하되 환히 알고(寂而常知), 또렷이 알되 늘 고요합니다(知而常寂). 멈추기만 하면 멍해지고, 보기만 하면 들떠요. 그러나 고요와 또렷함이 본래 한자리임을 알면, 애써 둘을 맞출 일이 없습니다. 고요한 그대로 깨어 있는 것 — 그 자리가 바로 마음이 길드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숨에 마음을 가만히 둡니다. 가라앉되 또렷이 알고, 또렷이 알되 다시 고요해지는 — 그 한 호흡을 그저 지켜보세요. 둘을 맞추려 애쓰지 말고. "Stillness (定) is the essence; insight (慧) is the function. As function inseparable from essence, insight never leaves stillness; as essence inseparable from function, stillness never leaves insight. Quiet yet ever-knowing; knowing yet ever-quiet."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Jinul shows the joint cultivation of stillness and insight (定慧雙修) in a single stroke...

[먼데이 선명상] 한 마음이 곧 중생의 마음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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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한 마음이 곧 중생의 마음 — 衆生心 원문 所言法者,謂衆生心。是心則攝一切世間法出世間法。 법(法)이라 말하는 것은 곧 중생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세간의 모든 법과 출세간의 모든 법을 다 거두어 안는다. — 『대승기신론』 본문, 원효 『소』 주석 쉬운 풀이 『기신론』은 '대승의 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뜻밖의 답을 합니다.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마음, 중생의 마음 이라는 것. 깨달은 부처의 마음을 멀리서 따로 찾는 게 아니에요. 원효 스님은 이 한 마음 안에 세간(번뇌·일상)도 출세간(깨달음)도 다 들어 있다고 풀었어요. 그러니 내 평범한 마음을 하찮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울고 웃는 이 마음이, 그대로 온 우주를 품은 자리니까요. 오늘의 명상 지금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속으로 말해 봅니다. "이 마음 하나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작게 여겨 온 내 마음에, 한 호흡만 너른 자리를 내어 주세요. "What is called 'the Dharma' is the mind of sentient beings. This mind embraces all worldly and world-transcending things." —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with Wonhyo's Commentary When asked "what is the Dharma of the Great Vehicle?", the Treatise gives a surprising answer: not some grand thing, but this very mind—the mind of ordinary beings. Wonhyo explained that within this one mind, both the worldly and the world-trans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