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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근본을 믿는다는 것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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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을 믿는다는 것 — 信根本 信心有四種。云何為四?一者信根本,所謂樂念真如法故。 믿음에 네 가지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첫째는 근본을 믿음이니, 진여(眞如)의 법을 즐겨 생각하는 것이다. —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 (원효 『소』가 풀이한 본문, 大正藏 T32 No.1666, CBETA 대조) 쉬운 풀이 『기신론』은 믿음의 목록을 넷으로 폅니다. 부처님을 믿고, 법을 믿고, 승가를 믿는 것보다 먼저 놓인 첫째가 '근본을 믿음' — 내 마음의 본바탕(진여)을 믿는 일이에요. 즐겨 생각하라(樂念) 했으니, 믿음은 억지로 붙드는 게 아니라 좋아서 자꾸 떠올리는 것. 오늘 하루, 내 본바탕을 좋아하는 연습을 합니다. 오늘의 명상 "내 바탕은 본래 온전하다"를 즐겨 생각해 봅니다. 의심이 올라와도 다투지 말고, 좋아하는 얼굴 떠올리듯 한 호흡 가만히 떠올려 보세요. English "Faith is of four kinds. The first is faith in the root: delighting to recall the law of suchness." — Awakening of Faith, section on cultivating faith (T32 No.1666, verified against CBETA) Before faith in Buddha, Dharma, and Sangha comes faith in the root — trust in the original ground of one's own mind. And it says delight to recall: faith is not gripped by force but returned to with fondness. Practice liking your own original ground today. Delight in the thought "my ground is originally whole." When ...

[먼데이 선명상] 집 안의 보물창고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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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의 보물창고 — 家有寶藏 譬如貧人,家有寶藏而無知者,知識示之,即得知也。 비유하면 가난한 사람이 집에 보물창고를 두고도 알지 못하다가, 선지식이 가리켜 보이면 곧 알게 되는 것과 같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卷1上 (大正藏 T46 No.1911, CBETA 대조) 쉬운 풀이 없던 보물이 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본래 집에 있던 보물을, 몰랐다가 알게 될 뿐. 수행이 그와 같다고 천태 스님은 말합니다. 부족한 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넉넉한 나를 확인하는 일. 오늘 앉는 자리는 무언가를 벌러 가는 자리가 아니라, 제 집 창고 문을 여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이미 있다"고 가만히 되뇌며 앉아 봅니다. 얻으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창고는 이미 집 안에 있음을 한 호흡 기억해 보세요. English "Like a poor man with a treasure-store at home who does not know it — when a good friend points, he knows." — Zhiyi, Mohe Zhiguan fasc. 1 (T46 No.1911, verified against CBETA) No new treasure appears; the treasure was always in the house — only now it is known. Practice is like that: not filling a lacking self, but confirming an already-ample one. Today's sitting is not going out to earn; it is opening the door of your own storehouse. Sit, quietly repeating "already here." When wanting arises, remember for one breath: the store is already in...

[먼데이 선명상] 숲에 앉은 편안함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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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앉은 편안함 — 我得甘露味 我得甘露味,安樂坐林間;恩愛之眾生,為之起慈心。 나는 감로의 맛을 얻어 숲 사이에 편안히 앉았노라. 은애(恩愛)에 매인 중생들, 그들을 위해 자비심을 일으키노라. —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 — 마왕의 세 딸의 물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답하심 (大正藏 T25 No.1509, CBETA 대조) 쉬운 풀이 마왕의 세 딸이 홀로 앉은 세존을 조롱하며 물었습니다. "큰 보배를 잃은 사람처럼, 무엇을 구해 여기 앉아 있는가?" 세존의 답은 구하는 자의 말이 아니라 이미 얻은 자의 말이었어요. 나는 감로의 맛을 얻어 편안히 앉아 있노라. 그리고 그 편안함은 홀로 그치지 않고 곧장 자비심으로 흘러넘칩니다. 잘 앉은 고요는 나를 쉬게 하고, 그다음엔 반드시 곁으로 흐릅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있는 편안함 한 조각을 찾아봅니다. 찾았다면, 그것이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흘러가게 한 호흡 두어 보세요. English "I have tasted the nectar; at ease I sit in the forest. For beings bound by affection, I give rise to a loving heart." — the Buddha's verse reply to Māra's three daughters,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T25 No.1509, verified against CBETA) Mocking the solitary Buddha, they asked: "Like one who has lost a great treasure — what do you seek, sitting here?" His answer is not a seeker's but a finder's: I have tasted the nectar, and sit at ease. And tha...

[먼데이 선명상]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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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원문 若眾生心,憶佛念佛,現前當來,必定見佛,去佛不遠;不假方便,自得心開。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지금이거나 앞날이거나 반드시 부처님을 뵙게 되어 부처님과 멀지 않으니, 다른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열립니다. — 『능엄경』 대세지염불원통장 (T19 No.945, p.128b)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의 소의 경문 쉬운 풀이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自得心開)" — 이 다섯 글자가 오늘의 전부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대단한 도구가 없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리워하고, 다만 부르는 것. 그 단순한 일이 그대로 길이 됩니다. 꽃봉오리를 손으로 벌려서 피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볕을 쬐면 때가 되어 저절로 벌어집니다. 염불이란 마음을 볕에 내어놓는 일 — 열리는 것은, 저절로의 몫입니다. 오늘의 명상 나직이 한 번, "나무아미타불" — 열어야 한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다만 부릅니다. 벌어지는 일은 봉오리에게 맡겨 두고. If beings remember the Buddha and recollect the Buddha, now or in time to come they will surely see the Buddha and never be far from him; without borrowing any other means, the heart opens of itself. — Śūraṅgama Sūtra, chapter on Mahāsthāmaprāpta's perfect penetration (the scriptural basis of Deokjin's Jeongto gamju) "The heart opens of itself" — these five characters are the whole of today. No special...

[먼데이 선명상]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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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원문 六祖因風颺剎幡,有二僧對論。一云幡動,一云風動。往復曾未契理。祖云:不是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二僧悚然。 바람에 깃발이 나부끼는데 두 스님이 다투었습니다.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고,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며 오가도 이치에 닿지 못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말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두 스님이 흠칫 놀랐습니다. —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 (T48 No.2005, p.296c) 쉬운 풀이 바람인가, 깃발인가. 둘 다 그럴듯해서 다툼은 끝나지 않습니다. 육조 스님은 심판을 보는 대신, 다투는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통째로 돌려세웁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 그대들의 마음이라고.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바쁜 날, 정작 나부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깃발을 잠재울 수는 없어도, 이 물음 앞에서는 잠시 고요해집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시비를 가리고 싶어지는 순간, 바깥의 깃발 대신 나부끼는 이 마음을 한 번 봅니다. 바람 탓도, 깃발 탓도 잠시 내려놓고. The wind was flapping a temple flag, and two monks were arguing: one said the flag moved, the other said the wind moved. Back and forth, they never touched the truth. The Sixth Patriarch said, "It is not the wind that moves; it is not the flag that moves; it is your mind that moves." The two monks were struck with awe. — The Gateless Gate, Case 29 Win...

[먼데이 선명상]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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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원문 此事如蚊子上鐵牛。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 등에 올라앉은 것과 같습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37a)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모기가 무쇠 소의 등에 앉았습니다. 침이 들어갈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란 그런 것이라고, 서산 스님은 말합니다. 이상한 격려입니다. "쉽다, 금방 된다"가 아니라 — 뚫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안 뚫린다고 물러날 일도, 조바심 낼 일도 없습니다. 잴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재는 마음이 먼저 쉬어 갑니다. 되고 안 되고를 놓아 버린 자리에서, 공부는 비로소 온몸의 일이 됩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되고 안 되고를 재지 않는 일 하나를 해 봅니다. 잘되어 가는지 묻지 않는 숨 한 번, 걸음 한 번. 무쇠 소 등에 앉은 모기처럼 — 다만 앉아 있어 봅니다. This matter is like a mosquito on an iron ox.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A mosquito lands on the back of an iron ox. Its needle cannot possibly go in. And yet, Seosan says, practice is like this. A strange encouragement — not "it's easy, you'll get it soon," but: of course it does not pierce. So there is no reason to retreat, and none to fret. Before something that cannot be measured, the measuring mind is the first to rest. Where success and failure are set do...

[먼데이 선명상]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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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원문 悟後長須照察,妄念忽起,都不隨之,損之又損,以至無爲。⋯ 天下善知識,悟後牧牛行是也。 깨친 뒤에도 늘 비추어 살펴, 망념이 문득 일어나도 도무지 따라가지 않고, 덜고 또 덜어 함이 없음(無爲)에 이릅니다. ⋯ 천하 선지식의 깨친 뒤 소 먹이는 행(牧牛行)이 이것입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11b) 쉬운 풀이 "알았다!" 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그다음은 소를 먹이는 시간입니다. 갓 길들인 소는 틈만 나면 남의 밭으로 들어갑니다. 소치는 사람은 화내지 않습니다. 고삐를 당겨 데려올 뿐, 매일, 천천히. 그러다 어느 날 고삐가 필요 없어집니다. 쌓아 올리는 공부가 아니라 덜어 내는 공부. 하나 알았다고 끝이 아니고, 백 번 데려온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 느린 길을 지눌 스님은 목우행이라 불렀습니다. 스스로를 목우자(牧牛子) — 소 치는 사람이라 이름하면서. 오늘의 명상 오늘 몇 번이든 마음이 남의 밭에 들어가거든, 화내지 않고 고삐를 당겨 봅니다. 덜고, 또 덜고. 서두르지 않는 소걸음으로. After awakening, keep watch: when deluded thoughts arise, do not follow them; lessen and lessen again, until you arrive at effortlessness... This is the ox-herding practice of all good teachers after awakening.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The moment of "I see!" is not the end, Jinul says. What follows is the time of tending the ox. A newly tamed ox slips into the ne...

[먼데이 선명상] 안에서 부르는 소리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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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안에서 부르는 소리 원문 以有真如法故,能熏習無明。以熏習因緣力故,則令妄心厭生死苦,樂求涅槃。⋯ 自信己性。 진여(眞如)의 법이 있기에 무명(無明)을 훈습(熏習)합니다. 그 훈습하는 인연의 힘으로, 망령된 마음도 나고 죽는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게 됩니다. ⋯ 그리하여 스스로 제 성품을 믿게 됩니다. — 『대승기신론』 (T32 No.1666, p.578b)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뱁니다. 훈습이란 그런 것 — 곁에 있는 것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신론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 안의 참된 성품이, 어리석음 쪽으로 늘 스며들고 있다고. "이렇게 사는 게 다일까" 하는 그 마음, 고요한 것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 바로 안에서 배어 나온 향내라고. 구도심은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안에서 부르고 있던 소리에, 어느 날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문득 고요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가만히 느껴 봅니다. 밖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이미 부르고 있었습니다. Because the true nature is present, it perfumes ignorance; by the power of this perfuming, even the deluded mind comes to weary of suffering and gladly seek nirvana... and so comes to trust its own nature.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Paper that wraps incense takes on its fragrance — that is "perfuming": what is near seeps in. And the Awakening ...

[먼데이 선명상] 마음 놓을 자리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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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마음 놓을 자리 원문 善巧安心者,善以止觀安於法性也。 마음을 잘 놓는다는 것은, 멈춤(止)과 봄(觀)으로써 마음을 법성(法性) — 본래 그러한 자리 — 에 편안히 놓는 것입니다. — 천태 『마하지관』 권5 (T46 No.1911, p.56b) 쉬운 풀이 "마음을 편히 놓으라"는 말은 많은데,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아무도 일러 주지 않습니다. 천태 스님의 답은 뜻밖에 단순합니다. 법성 —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본래 그러한 자리.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마음에도 본래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멈추어(止) 바람을 재우고, 보아서(觀) 그 자리를 알아차립니다. 놓는 곳이 따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애쓰기 이전의 자리, 지금 이대로의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듯, 마음을 한 번 내려놓아 봅니다. 어디에? — 지금 이대로의 자리에. 내려놓은 뒤의 고요를, 잠시 맛봅니다. To skillfully settle the mind is to settle it, by means of calming and contemplation, upon the nature of things as they are. — Zhiyi, The Great Calming and Contemplation, fasc. 5 "Put your mind at ease," everyone says — but no one tells us where to put it. Zhiyi's answer is unexpectedly simple: upon the dharma-nature, the place that is so without being made so. As water returns downhill, the mind too has a place it originally returns to. Calming stills the wind; contemplat...

[먼데이 선명상]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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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원문 亂心輕飄,甚於鴻毛;馳散不停,駛過疾風;不可制止,劇於獼猴;暫現轉滅,甚於掣電。 어지러운 마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나부끼고, 쉼 없이 내달리는 것이 세찬 바람보다 빠르며, 붙들기 어렵기가 원숭이보다 심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가 번개보다 급합니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T25 No.1509, p.180c) 쉬운 풀이 이천 년 전 사람의 마음도 이랬습니다. 깃털처럼 팔랑이고, 바람처럼 내달리고, 원숭이처럼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다니는 마음. 그러니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할까" 하고 자신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본래 그런 결을 가졌다고, 용수 스님은 먼저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날뛰는 원숭이를 혼내서 재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줄 뿐입니다. 선(禪)이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몇 번이고 달아나거든, "또 갔구나" 하고 빙긋 웃어 봅니다. 원숭이를 붙잡는 대신,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줍니다. 숨 한 번 — 그 자리면 충분합니다. The scattered mind flutters lighter than a goose feather, races faster than a gale, is harder to hold than a monkey, appears and vanishes quicker than lightning. — Nāgārjuna, Treatise on the Great Perfection of Wisdom, fasc. 17 Minds were like this two thousand years ago, too — fluttering like feathers, racing like wind, leaping branch to branch like a monkey. So there is no need to scold yourself ...

[먼데이 선명상]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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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원문 禪淨何甞歧二,修證究竟歸一者也。 선(禪)과 정토(淨土)가 언제 둘로 갈린 적 있었던가. 닦음과 증득은 끝내 하나로 돌아갑니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서문 (韓佛全 H0288 · X62 No.1202, 649a) 쉬운 풀이 참선하는 사람과 염불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덕진 스님은 서문 첫머리에서 조용히 되묻습니다 — 그 둘이 언제 갈라진 적이 있었느냐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는 일과,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모으는 일. 문은 달라 보여도, 들어서면 같은 방입니다. 내 방식만 옳다고 붙잡는 마음이 오히려 길을 둘로 가릅니다. 길은 본래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고요히, 또는 나직이 "나무아미타불" — 오늘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같은 방에 닿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When were Seon and Pure Land ever split in two? Practice and realization return, in the end, to one. — Heoju Deokjin, Preface to the Jeongto gamju They say meditators and chanters walk different roads. But Deokjin quietly asks back, at the very opening of his book: when were the two ever divided? Sitting still and watching the mind, or gathering the mind on the Buddha's name — the doors look different, but they open into the same room. It is the grip of "only my way" that splits the road...

[먼데이 선명상] 발우나 씻게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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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발우나 씻게 원문 趙州因僧問:某甲乍入叢林,乞師指示。州云:喫粥了也未?僧云:喫粥了也。州云:洗鉢盂去。其僧有省。 한 스님이 조주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갓 들어왔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죽은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럼 발우나 씻게." 그 스님이 문득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 (T48 No.2005, p.293c) 쉬운 풀이 특별한 가르침을 기다리던 스님에게 조주 스님은 아침 설거지를 가리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도(道)가 죽 먹고 발우 씻는 일 바깥에 따로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거창한 것을 찾는 동안, 손안의 일은 늘 시시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시시한 일 하나를 온전히 하는 것 — 거기서 그 스님은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오늘의 명상 오늘 아침 밥그릇을 씻을 때, 그 일 하나만 해 봅니다. 물소리, 그릇의 매끈함, 손끝의 온기. 다른 데를 찾지 않는 손이,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A monk said to Zhaozhou, "I have just entered the monastery. Please instruct me." Zhaozhou asked, "Have you eaten your rice porridge?" "I have." "Then go wash your bowl." At that, the monk understood. — The Gateless Gate, Case 7 To a monk waiting for something special, Zhaozhou points at the morning dishes. This is no joke: if the Way existed apart from eating porridge and wash...

[먼데이 선명상]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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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원문 凡夫取境,道人取心。心境兩忘,乃是眞法。 범부는 경계를 붙잡고, 도인은 마음을 붙잡습니다.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으면, 그것이 참 법입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43b)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좋은 일이 생기면 좋아지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무너집니다. 바깥 것을 붙잡고 사는 마음은 늘 바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방향을 바꿉니다. 바깥이 아니라, 흔들리는 이 마음을 봅니다. 그런데 서산 스님은 한 걸음 더 갑니다 — 마음마저 붙잡지 말라고. 붙잡을 것이 다 놓일 때, 참 법은 이미 거기 있다고. 붙잡지 않는 손은, 빈손이 아니라 자유로운 손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흔든 것을 탓하기 전에 흔들리는 마음을 한 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바라봄마저,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 Ordinary people grasp at circumstances; practitioners grasp at mind. When both mind and circumstances are forgotten — that is the true Dharma.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Good news lifts us, harsh words topple us — a mind that lives grasping the outside is always busy. The practitioner turns around and watches the shaken mind instead. But Seosan goes one step further: do not grasp even the mind. When all grasping is set down, the true Dharma is already there. An ungrasping hand is not empty — ...

[먼데이 선명상] 한 생각, 빛을 돌이켜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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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한 생각, 빛을 돌이켜 원문 忽被善知識指示入路,一念廻光,見自本性。⋯ 無漏智性,本自具足,卽與諸佛,分毫不殊。 문득 선지식이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주면,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봅니다. ⋯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09c) 쉬운 풀이 우리는 하루 종일 밖을 봅니다. 좋은 것, 싫은 것, 해야 할 것. 눈부신 손전등을 늘 바깥으로만 비추고 있는 셈입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그 빛을 한 번, 안으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보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듣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찾아 헤매던 것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털끝만큼도 모자라지 않게. 오늘의 명상 창밖을 보다가, 문득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은 누구인가. 답을 만들지 않고, 그 물음 곁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When a good teacher points the way in, in a single thought the light turns around and one sees one's own nature... The untainted wisdom-nature is originally complete in itself, differing from all the Buddhas by not a hair's breadth.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All day we shine our flashlight outward — things to like, to dislike, to do. Turning the light around means letting it face inward, once: what is this that sees? What is...

[먼데이 선명상]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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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원문 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 心若馳散,即當攝來,住於正念。 멈춤(止)을 닦는 이는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 뜻을 바르게 합니다. ⋯ 마음이 내달려 흩어지면, 곧 거두어 와 바른 생각에 머물게 합니다. —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 (T32 No.1666, p.582a)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방법이 참 단순합니다. 고요한 자리. 바른 자세. 그리고 마음이 달아나면 — 다시 데려오는 것. 혼내지 않고 데려옵니다. 강아지가 마당을 뛰쳐나가면 조용히 데려오듯이. 백 번 나가면 백 번 데려옵니다. 그 데려오는 일이 실패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몸이 먼저입니다. 바르게 앉는 것만으로 마음은 벌써 반쯤 돌아와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한 번 세워 봅니다. 마음이 어느새 딴 데 가 있다면 — 잘 보았습니다.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데려옵니다. 그뿐입니다. One who practices calming dwells in a quiet place, sits upright, and sets the mind aright... If the mind runs and scatters, gather it back and let it rest in right mindfulness.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The method is simple: a quiet seat, an upright posture, and — when the mind runs off — bringing it back. Not scolding, just bringing it back, the way you would quietly fetch a puppy that ran into the yard. A hundred times out, a hundre...

[먼데이 선명상] 이미 부처, 아직 길 위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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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이미 부처, 아직 길 위 원문 若無信,高推聖境,非己智分;若無智,起增上慢,謂己均佛。 믿음이 없으면 성인의 경지를 저 높이 밀어 두고 "내 몫이 아니다" 하고, 지혜가 없으면 우쭐한 마음을 일으켜 "내가 이미 부처와 같다" 합니다. — 천태 『마하지관』 권1 (T46 No.1911, p.10b) 쉬운 풀이 천태 스님은 두 가지 헛디딤을 말합니다. 하나는 "부처는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라며 밀어 두는 것. 또 하나는 "나는 이미 다 되었다"며 우쭐해지는 것. 믿음은 말합니다 — 당신은 본래 그 자리에 있다고. 지혜는 말합니다 — 그래도 길은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미 부처이면서, 아직 길 위에 있습니다. 이 둘은 싸우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앉는 일이, 꼭 그렇습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아침, 두 마음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이대로 괜찮다"는 마음과, "그래도 한 걸음 걷는다"는 마음. 둘 사이 어디쯤에서, 숨 한 번 쉬어 봅니다. Without faith, one pushes the sage's realm far away, saying "not my share"; without wisdom, one grows conceited, saying "I am already equal to the Buddha." — Zhiyi, The Great Calming and Contemplation, fasc. 1 Two missteps: pushing awakening far away as someone else's story, or puffing up as if the walk were already finished. Faith says — you are originally there. Wisdom says — and st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