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26의 게시물 표시

[먼데이 선명상] 바람 속 등불 — 용수 『대지도론』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바람 속 등불 원문 實智慧從一心禪定生。譬如然燈,燈雖能照,在大風中不能為用;若置之密宇,其用乃全。 참 지혜는 한마음의 선정에서 납니다. 등불을 켠 것과 같으니, 등불이 비출 수 있어도 큰 바람 속에서는 제 구실을 못 하고, 바람 없는 방에 두면 그 쓰임이 온전합니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T25 No.1509, p.180c) 쉬운 풀이 등불이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흔들 뿐입니다. 우리 안의 밝음도 그렇습니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켜져 있습니다. 다만 하루 종일 부는 바람 — 서두름, 걱정, 이런저런 소리 — 속에서는 그 빛이 제대로 비추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고요히 앉습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등불을 바람 없는 방에 옮겨 두는 일입니다. 그러면 빛은, 저절로 온전해집니다. 오늘의 명상 잠시 바람 없는 방이 되어 봅니다. 허리를 바로 하고 앉아, 숨이 드나드는 것을 그저 지켜봅니다. 빛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람이 잦아들면, 이미 밝습니다. True wisdom is born from the stillness of one mind. A lamp, though it can shine, is of little use in a great wind; placed in a sheltered room, its light becomes whole. — Nāgārjuna, Treatise on the Great Perfection of Wisdom, fasc. 17 The lamp is not dark — the wind is only shaking it. The brightness in us does not need to be made; it is already lit. Sitting quietly is simply moving the lamp into a windless room. Then the light become...

[먼데이 선명상] 향기가 몸에 배듯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이미지
  향기가 몸에 배듯 — 如染香人 身有香氣 如染香人,身有香氣,此則名曰香光莊嚴。 향(香)에 물든 사람은 몸에 향기가 배니, 이를 일러 향광장엄(香光莊嚴)이라 한다. — 『수능엄경』 卷5 「대세지보살 염불원통장」 (大正藏 T19 No.945, CBETA 대조)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가 잇는 염불 전통의 가르침 쉬운 풀이 두 주 전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을 보았지요. 오늘은 같은 장(章)의 다른 비유입니다. 향을 파는 집에 오래 머문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몸에 향기가 뱁니다. 염불이 그와 같다고요. 부처님을 부르는 일은 무언가를 얻어 내는 거래가 아니라, 그저 그 곁에 머무는 일입니다. 머물다 보면 나도 모르게 배어드는 것 — 그것이 향광장엄이에요. 허주 덕진 스님이 선과 염불을 함께 권한 마음도 여기 있습니다. 참선도 염불도, 좋은 향 곁에 머무는 두 가지 길이니까요.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 몸에 밴 작은 향기를, 곁의 한 사람에게 가만히 건넵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숨을 쉬며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소리를 잘하려 하지 말고, 향이 배듯 그저 그 소리 곁에 머물러 보세요. 마지막에, 이 향기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가만히 보내 주세요. English "Like one steeped in incense, whose body carries its fragrance — this is called the adornment of fragrance and light." — Śūraṅgama Sūtra, fasc. 5, Mahāsthāmaprāpta's chapter on mindfulness of the Buddha (T19 No.945, verified against CBETA); the recitation tradition carried on by Deokjin's Jeongto Gamju (H0288) Two weeks ago: "...

[먼데이 선명상] 평상심이 곧 길 — 『간화선 입문』(무문관)

이미지
  평상심이 곧 길 — 平常心是道 趙州問:如何是道。南泉云:平常心是道。……頌曰:春有百花秋有月,夏有涼風冬有雪;若無閑事挂心頭,便是人間好時節。 조주가 물었다. "무엇이 도(道)입니까?" 남전이 답했다. "평상심이 도이니라." …… 무문이 노래했다. 봄에는 온갖 꽃, 가을엔 달; 여름엔 서늘한 바람, 겨울엔 눈; 부질없는 일만 마음에 걸어 두지 않으면, 그대로 인간 세상 좋은 시절이라. — 『무문관(無門關)』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 (大正藏 T48 No.2005, CBETA 대조), 『간화선 입문』이 다루는 공안 쉬운 풀이 젊은 조주가 스승 남전에게 도를 묻자, 돌아온 답은 허무할 만큼 평범했습니다. 특별한 마음이 아니라 평소의 그 마음이 도라고요. 그런데 조주는 이 한마디에서 크게 깨쳤습니다. 무문 스님의 노래가 그 소식을 사철에 담았어요. 꽃, 달, 바람, 눈 — 계절은 언제나 이미 좋았고, 다만 부질없는 걱정 하나가 마음에 걸려 그것을 못 보았을 뿐. 도를 찾으러 멀리 갈 것 없이, 걸어 둔 그 한 가지를 내리면 지금이 좋은 시절입니다. 오늘의 명상 "평상심이 도"라는 다섯 글자를 가만히 듭니다. 특별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늘 있던 이 평범한 마음을 한 호흡 그대로 바라보세요. English Zhaozhou asked, "What is the Way?" Nanquan said, "Ordinary mind is the Way." … Wumen's verse: "Spring has its flowers, autumn its moon; summer its cool wind, winter its snow. If no idle matter hangs on your mind, this is the best season of your life." — The Gateless Gate, Case 19 (T48 No.2005, verif...

[먼데이 선명상]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니 — 청허 『선가귀감』

이미지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니 — 空手來 空手去 空手來,空手去,吾家活計。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우리 집 살림살이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卍新續藏 X63 No.1255, CBETA 대조) 쉬운 풀이 살림살이라 하면 쌓아 둔 세간을 떠올리지만, 청허 스님의 살림은 거꾸로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것 — 그게 수행자의 전 재산이라고요. 가진 게 없다는 한탄이 아니에요. 본래 아무것도 쥐지 않았으니 잃을 것도 없고, 잃을 게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는 넉넉함입니다. 배경으로 함께 읽는 월창거사 『선학입문』도 이 홀가분한 자리로 드는 길을 안내합니다. 오늘 하루, 꼭 쥔 것을 다 내려놓을 수는 없어도, 빈손의 넉넉함을 잠깐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두 손을 가만히 펴 봅니다. 쥔 것 없는 빈 손바닥을 바라보며, 이 홀가분함이 본래 내 살림임을 한 호흡 느껴 보세요. English "Empty-handed we come, empty-handed we go — this is the housekeeping of our house." — Cheongheo Hyujeong, Mirror of the Seon School (X63 No.1255, verified against CBETA) "Housekeeping" usually means what we've stored up, but Cheongheo's household runs the other way: coming empty-handed and going empty-handed is the practitioner's entire fortune. This is no lament of having nothing. Since nothing was ever grasped, nothing can be lost; with nothing to lose, there is nothing to fe...

[먼데이 선명상]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 — 지눌 『수심결』

이미지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 — 眞心如空 色身是假,有生有滅;真心如空,不斷不變。故云:百骸潰散,歸火歸風;一物長靈,蓋天蓋地。 색신(몸)은 임시라 나고 사라짐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 끊어지지도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온몸의 뼈마디가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돌아가도, 한 물건이 길이 신령하여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하였다. — 지눌 『수심결(修心訣)』 (大正藏 T48 No.2020, CBETA 대조) 쉬운 풀이 몸은 늙고 아프고 언젠가 흩어집니다. 지눌 스님은 그것을 감추지 않아요. 다만 그 곁에 한 줄을 나란히 놓습니다. 흩어지는 것 곁에, 흩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고. 허공은 태어난 적이 없어서 죽지도 않지요. 참마음이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몸이 무너지는 것이 두려운 날에도, 그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있는 이 앎 자체는 한 번도 다친 적이 없습니다. 오늘은 그 다치지 않는 자리에 잠깐 기대어 봅니다. 오늘의 명상 숨을 쉬며, 몸의 감각을 느껴 봅니다. 그리고 그 감각을 알고 있는 앎은 아프지도 늙지도 않음을, 한 호흡 가만히 확인해 보세요. English "This body is provisional — it is born and it perishes; the true mind is like space — unbroken, unchanging. Thus it is said: when the hundred bones scatter, returning to fire and wind, one thing remains forever numinous, covering heaven and earth."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T48 No.2020, verified against CBETA) The body ages, hurts, and will one day scatter. Jinul does not hide this. He only lays one line ...

[먼데이 선명상] 마음이 나면 만법이 나고 — 원효 『대승기신론소』

이미지
  마음이 나면 만법이 나고 — 心生則種種法生 心生則種種法生,心滅則種種法滅。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法)이 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갖가지 법이 사라진다. — 『대승기신론』 (원효 『소』가 풀이한 본문, 大正藏 T32 No.1666, CBETA 대조) 쉬운 풀이 원효 스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은 뒤 읊었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 구절이, 스님이 평생 풀이한 『기신론』의 이 대목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세계가 함께 일어나고, 마음이 쉬면 그 세계도 함께 쉰다는 것. 간밤의 달콤한 물과 아침의 해골물 — 물이 변한 게 아니라 마음이 변했지요. 오늘 세상이 유난히 거칠게 느껴진다면, 세상을 고치러 나서기 전에 한 번만 물어봅니다. 지금 무엇이 일어나 있는가, 세상인가, 마음인가. 오늘의 명상 지금 눈앞의 풍경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바쁠 때와 고요할 때 같은 풍경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 한 호흡 가만히 견주어 보세요. English "When mind arises, all things arise; when mind subsides, all things subside." — Awakening of Mahāyāna Faith, the text Wonhyo spent his life expounding (T32 No.1666, verified against CBETA) This is the very line linked to Wonhyo's awakening with the skull-water: when mind arises, a whole world arises with it; when mind rests, that world rests too. The sweet water at night and the skull water at dawn — the water never changed; the mind did. If the world feels rough today, before setting out to fix it,...

[먼데이 선명상] 번뇌가 곧 보리 — 천태 『마하지관』

이미지
  번뇌가 곧 보리 — 無明塵勞即是菩提 無明塵勞即是菩提……生死即涅槃,無滅可證。 무명과 티끌 같은 번뇌가 그대로 곧 보리(菩提)요…… 나고 죽는 이 삶이 그대로 열반이라, 따로 증득할 소멸이 없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卷1上 「원돈(圓頓)」 (大正藏 T46 No.1911, CBETA 대조) 쉬운 풀이 지난주 '멈춤은 기르고 봄은 깨운다'를 보았다면, 오늘은 마하지관에서 가장 과감한 한마디를 봅니다. 번뇌를 끊어야 깨달음이 오는 게 아니라, 번뇌가 그대로 보리라는 것. 시끄러운 이 마음을 버리고 다른 고요한 마음을 얻는 게 아니에요. 시끄러움의 정체를 바로 보면, 그 자리가 이미 깨어 있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오늘 올라오는 번뇌 하나를 원수처럼 볼 것 없어요. 그것이 일어나는 바로 그 자리가, 우리가 찾던 자리이니까요. 오늘의 명상 지금 마음에 걸리는 번뇌 하나를 떠올립니다. 없애려 하지 말고, "이 자리가 바로 그 자리"라고 여기며 한 호흡 가만히 함께 있어 보세요. English "Ignorance and the dust of affliction are none other than awakening… birth-and-death is itself nirvāṇa; there is no cessation apart to attain." — Zhiyi, Mohe Zhiguan, fasc. 1 on the Perfect-Sudden (T46 No.1911, verified against CBETA) Last week: stopping nurtures, seeing awakens. Today, the boldest line in the Mohe Zhiguan — awakening does not come by cutting off affliction; affliction as it is, is awakening. We don't discard this noisy mind to g...

[먼데이 선명상] 선은 금강 갑옷 — 용수 『대지도론』

이미지
  선은 금강 갑옷 — 禪為金剛鎧 禪為金剛鎧,能遮煩惱箭;雖未得無餘,涅槃分已得。 선(禪)은 금강 갑옷이라, 번뇌의 화살을 막아 준다; 아직 완전한 열반은 얻지 못했어도, 열반의 몫은 이미 얻은 것이다. — 용수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禪波羅蜜)」 (大正藏 T25 No.1509, CBETA 대조) 쉬운 풀이 몇 주 전 '선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 맑은 물'이라는 게송을 보았지요. 오늘은 그 게송의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이번엔 갑옷이에요. 화살을 되쏘는 무기가 아니라, 그저 막아 주는 갑옷. 번뇌와 싸워 이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요히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이미 갑옷이어서, 날아오던 화살이 힘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뒤 구절이 참 다정해요. 아직 다 이루지 못했어도, 그 몫은 이미 받았다고요. 오늘 앉은 이 한 자리가 모자란 연습이 아니라, 이미 받은 몫입니다. 오늘의 명상 잠깐 앉아, 몸이 갑옷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고 느껴 봅니다. 무엇과 싸우지 말고, 지켜지고 있음을 한 호흡 느껴 보세요. English "Dhyāna is armor of diamond — it wards off the arrows of affliction; though the final rest is not yet won, its share is already gained." — Nāgārjuna,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on the Dhyāna Pāramitā (T25 No.1509, verified against CBETA) Weeks ago we read that dhyāna is a treasury guarding wisdom, clear water. Today, the very next lines of that same verse. This time: armor. Not a weapon that shoots back — just armor that shields. It doesn'...

[먼데이 선명상]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淨土紺珠)』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念佛者是誰 원문 念佛者是誰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참구염불(參究念佛)의 화두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가 잇는 선정겸수(禪淨兼修)의 자리 쉬운 풀이 지난 주까지 선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여러 갈래로 보았지요. 오늘은 그 둘이 실제로 한 자리에서 만나는 오랜 공부법을 소개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문득 되묻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부르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소리는 밖으로 나가는데, 이 물음은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 순간 염불이 그대로 화두가 되어요. 부르는 입과 듣는 귀와 묻는 마음이 한 자리에서 만납니다. 답을 찾으라는 게 아니에요. 물음이 돌아오는 그 자리에 잠깐 서 보는 것만으로, 부르던 부처가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 슬며시 드러납니다.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의 작은 모음을 나 혼자 갖지 않고, 곁의 한 사람에게 가만히 돌려 비춥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그리고 가만히 — 방금 부른 이는 누구인가, 한 번만 물어봅니다. 답하지 말고, 물음이 돌아온 그 자리에서 한 호흡. 마지막에, 이 고요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보내 주세요. "Who is it that recites the Buddha's name?" — the hwadu of inquiring recitation (chamgu yeombul), the meeting place of Seon and Pure Land carried on by Heoju Deokjin's Jeongto Gamju (H0288) In past weeks we saw, from several sides, that Seon and recitation are not two. Today, the old practice where they actually meet in one place: ...

[먼데이 선명상] 다만 스스로 알 뿐 — 『간화선 입문』(무문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다만 스스로 알 뿐 — 如啞子得夢 원문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마치 말 못 하는 이가 꿈을 꾼 것 같아서, 다만 스스로 알 뿐이다. 그러다 문득 터져 나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 — 무문 혜개, 『무문관(無門關)』 제1칙 평창 (大正藏 T48), 『간화선 입문』이 다루는 참구법 쉬운 풀이 무자 화두를 온몸으로 품고 익어 가면 어떤 상태가 되는가. 무문 스님의 답이 재미있어요. 말 못 하는 이가 꿈을 꾼 것 같다고. 분명히 생생한데, 남에게 말로 전할 길이 없고, 다만 스스로 알 뿐이라고요. 보여 주고 알리는 일에 바쁜 요즘, 이 말이 오히려 시원합니다. 이 공부는 자랑할 수도, 비교할 수도, 점수 매길 수도 없어요. 인증할 수 없어서 초라한 게 아니라, 인증이 필요 없어서 온전히 내 것입니다. 남이 몰라줘도 조금도 줄지 않는 것 — 그런 것을 하나 품고 사는 사람은 든든합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좋았던 한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다만 스스로만 알아 봅니다. 남이 몰라도 줄지 않는 그 맛을 한 호흡 간직해 보세요. "It is like a mute who has had a dream — he alone knows it. Then, suddenly bursting forth, it startles heaven and shakes the earth." — Wumen Huikai, commentary on Case 1 of The Gateless Gate What is it like when the word "No" has been carried in the whole body and ripened? Wumen's answer is striking: like a mute who has had a dream — vivid beyond doubt, yet with no way to tell it, known...

[먼데이 선명상] 닭이 알을 품듯 — 청허 『선가귀감』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닭이 알을 품듯 — 如雞抱卵 원문 工夫如雞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必有透徹之期 공부는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주린 이가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듯 하면, 반드시 사무쳐 뚫리는 때가 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韓佛全 7, H0138) 쉬운 풀이 공부하는 마음의 다섯 그림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다섯 다 '이를 악물고 애쓰는' 그림이 아니에요. 닭은 알을 조이지 않고 그저 품습니다. 주린 이는 밥 생각을 애써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하지요.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요. 다 힘이 아니라 간절함의 그림, 다그침이 아니라 품음의 그림입니다. '반드시 뚫리는 때가 있다'는 말도 시험 합격 같은 약속이라기보다, 품는 이의 마음가짐이에요. 알이 언제 깨어날지 닭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만 따뜻함이 떠나지 않게 할 뿐. 배경으로 함께 읽는 월창거사 『선학입문』도 이 간절하고 담담한 공부길을 안내합니다. 오늘의 명상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물음 하나를 떠올립니다. 오늘은 그것을 풀려고 하지 말고, 알을 품듯 그냥 따뜻하게 품고만 있어 봅니다. 한 호흡, 온기가 떠나지 않게. "Practice is like a hen brooding on her egg, like a cat watching a mousehole, like the hungry thinking of food, like the thirsty thinking of water, like a child longing for its mother — then there will surely come a time of breaking through." — Cheongheo Hyujeong, Mirror of the Seon School Five pictures of the practi...

[먼데이 선명상] 얼음이 녹듯, 서두르지 않고 — 지눌 『수심결』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보조 지눌 『수심결(修心訣)』 얼음이 녹듯, 서두르지 않고 — 識冰池而全水 원문 識冰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即佛 資法力以熏修 얼음 언 연못이 온전히 물인 줄 알아도 햇볕을 빌려 녹이듯,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아도 법의 힘을 빌려 익혀 간다. — 지눌 『수심결(修心訣)』 (韓佛全 4, H0068) 쉬운 풀이 꽁꽁 언 연못을 봅니다. 이것이 얼음이 아니라 온전히 물이라는 것 — 아는 데는 한순간이면 됩니다. 그런데 아는 순간 얼음이 곧바로 다 녹던가요? 햇볕을 받으며 녹는 시간이 따로 흐릅니다. 지눌 스님은 우리 마음공부가 꼭 이렇다고 말해요. 내가 본래 부처라는 걸 문득 알아도, 몸에 밴 버릇이 녹는 데는 볕 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비유가 다정한 건, 양쪽 모두를 괜찮다고 해 주기 때문이에요. 아직 얼음 같아 보여도 이미 물이니 괜찮고, 알고 나서도 더디 녹는 것 역시 원래 그런 것이니 괜찮습니다. 조급해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오늘의 명상 빨리 바뀌지 않는 내 모습 하나를 떠올립니다. 그것을 얼음 깨듯 다그치지 말고, 볕에 내어놓은 얼음처럼 그냥 두어 봅니다. 이미 물이라는 것만 기억하며, 한 호흡. "Knowing the frozen pond is entirely water, one borrows the sun's warmth to melt it; awakening to the fact that an ordinary person is Buddha, one relies on the Dharma's power to steep and cultivate."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Look at a pond frozen solid. To know it is not ice but entirely water takes only an instant. But does the ice all melt the moment you know? ...

[먼데이 선명상] 왜 '한 마음'이라 하는가 — 원효 『대승기신론소』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왜 '한 마음'이라 하는가 — 性自神解 원문 何為一心 謂染淨諸法其性無二 真妄二門不得有異 故名為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為心 무엇을 한 마음(一心)이라 하는가? 물든 법과 맑은 법이 그 성품이 둘이 아니요, 참됨과 거짓의 두 문도 다를 수 없으니, 그래서 '하나(一)'라 한다. 이 둘 없는 자리는 온갖 법 가운데 실다워서, 텅 빈 허공과는 같지 않고 성품이 스스로 신령히 아니, 그래서 '마음(心)'이라 한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 (大正藏 T44) 쉬운 풀이 앞서 한 마음에 두 문이 있다는 것을 보았지요. 오늘은 원효 스님이 스스로 묻고 답합니다. 도대체 왜 '한 마음'이라 부르는가. 답은 두 글자에 나누어 들어 있어요.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알고 보면 성품이 둘이 아니라서 '하나(一)'. 그리고 그 자리가 텅 빈 허공 같은 게 아니라 스스로 신령하게 알고 있어서 '마음(心)'. 그러니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도려내야 하나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미 둘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하나는 멍한 공백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환히 알고 있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에 좋은 생각이 오면 '하나', 미운 생각이 와도 '하나'라고 가만히 속삭여 봅니다. 나누어 밀어내지 말고, 둘 다 한 마음의 일렁임임을 한 호흡 지켜보세요. "What is the one mind? The defiled and the pure are not two in nature, and the gates of true and deluded cannot differ — hence 'one.' This place without two is real amid all things; unlike empty space, its n...

[먼데이 선명상] 멈춤은 기르고, 봄은 깨운다 — 천태 『마하지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摩訶止觀)』 멈춤은 기르고, 봄은 깨운다 — 愛養心識 원문 止乃伏結之初門 觀是斷惑之正要 止則愛養心識之善資 觀則策發神解之妙術 멈춤(止)은 번뇌를 쉬게 하는 첫 문이요, 봄(觀)은 미혹을 끊는 바른 요체다. 멈춤은 마음을 아끼고 기르는 좋은 밑거름이요, 봄은 신령한 앎을 일깨우는 묘한 솜씨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卷一 (大正藏 T46) 쉬운 풀이 멈춤(止)을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참는 것', '억누르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지의 스님의 말은 다릅니다. 멈춤이 마음을 "아끼고 기른다(愛養)"고요. 쉬는 것이 곧 기르는 것이라는 말이에요. 밭을 놀리는 게 낭비가 아니라 땅심을 기르는 일이듯이요. 그리고 봄(觀)은 그렇게 쉬어 부드러워진 자리에서 신령한 앎이 저절로 깨어나는 일입니다. 억지로 눈을 부릅뜨는 게 아니라, 푹 쉰 아침에 눈이 절로 맑아지듯이. 그러니 오늘 잘 쉬는 것은 수행을 미루는 게 아니라, 이미 수행의 절반입니다. 오늘의 명상 지금 잠깐 하던 일을 멈춥니다. 이 멈춤이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을 기르는 중이라고 여기며, 쉼 속에서 무엇이 맑아지는지 한 호흡 지켜보세요. "Stopping is the first gate for settling the afflictions; seeing is the true essential for cutting delusion. Stopping is the good nourishment that tends and nurtures the mind; seeing is the subtle art that awakens spirit-like understanding." — Zhiyi, The Great Treatise on Śamatha-Vipaśyanā, fasc. 1 When we hear "stopping," we often think of enduring, su...

[먼데이 선명상] 고요히 앉는 이 즐거움 — 용수 『대지도론』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大智度論)』 고요히 앉는 이 즐거움 — 斯樂非天樂 원문 閑坐林樹間 寂然滅諸惡 憺怕得一心 斯樂非天樂 숲 나무 사이에 한가로이 앉아, 고요히 온갖 시끄러움을 쉬고, 맑고 담담히 한마음을 얻으니 — 이 즐거움은 하늘의 즐거움도 미치지 못한다. — 용수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禪波羅蜜)」 (大正藏 T25 No.1509) 쉬운 풀이 앞서 우리는 얻을수록 목마른 다섯 욕망 이야기를 보았지요. 오늘은 그 반대편의 즐거움을 노래한 게송입니다. 숲 사이에 그냥 앉아 있는 것 —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아무것도 이루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그 시간이 하늘의 즐거움보다 낫다고요. 세상의 즐거움은 대개 무언가를 얻어야 옵니다. 그래서 얻기 전엔 조급하고, 얻고 나면 다시 목마르지요. 그런데 이 즐거움은 거꾸로예요. 구하던 것을 내려놓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라, 미리 조급할 것도 나중에 목마를 것도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지금도, 열려 있는 즐거움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하루 어느 한때,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시간을 잠깐 가져 봅니다. 무엇이 되려는 마음도 내려놓고, 그냥 앉아 있는 이 자리의 담담한 맛을 한 호흡 느껴 보세요. "Sitting at ease among the forest trees, quietly stilling every ill, serene, one gains a single mind — this joy is beyond even the joys of heaven." — Nāgārjuna,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on the Dhyāna Pāramitā Earlier we saw the five desires that leave us thirstier the more we gain. Today, a verse singing the opposite joy: simply sitting among the trees — buying nothi...

[먼데이 선명상] 뿔 달린 호랑이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뿔 달린 호랑이 원문 有禪有淨土 猶如戴角虎 現世爲人師 來生作佛祖 선(禪)도 있고 정토(淨土)도 있으면 마치 뿔 달린 호랑이와 같아, 이 세상에서는 사람의 스승이 되고 오는 생에는 부처와 조사가 된다. — 사료간(四料簡). 전통적으로 영명 연수 스님에게 돌려지는 게송으로, 허주 덕진 『정토감주』(한불전 H0288)의 선정겸수(禪淨兼修) 정신이 이 자리에 서 있다. 쉬운 풀이 호랑이는 이미 충분히 강합니다. 거기에 뿔까지 달렸다니, 상상만 해도 든든하지요. 선과 염불을 함께 닦는 일을 옛 어른들은 그렇게 보았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다툼이 아니라, 둘이 서로를 더 단단하게 해 주는 일이라고요. 왜 그럴까요. 화두를 드는 힘은 곧고 날카롭지만, 홀로 오래 가려면 마음을 적셔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을 부르는 마음에는 그 촉촉함이 있습니다. 반대로 염불만 있으면 자칫 밖의 누군가에게 기대는 데서 멈추기 쉬운데, 선의 눈이 그것을 안으로 돌려 세웁니다. 허주 덕진 스님이 『정토감주』에서 붙들고 있는 자리도 여기입니다. 염불하는 그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묻는 순간, 염불은 곧 참선이 됩니다. 뿔과 호랑이가 둘이 아닌 것처럼요. 오늘의 명상 숨을 들이쉬며 속으로 '나무아미타불' 한 번, 내쉬며 "이 부르는 자는 누구인가" 한 번. 답하지 않고, 열 번만 되풀이합니다. "With Seon and with Pure Land — like a tiger that has grown horns: in this life a teacher of others, in the next a Buddha or patriarch." A tiger is already strong enough. Give it horns as well — the image alone is reassuring. This is how the old teachers ...

[먼데이 선명상] 큰 길에는 문이 없다 — 『간화선 입문』(무문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큰 길에는 문이 없다 원문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큰 길에는 문이 없고, 갈래갈래마다 길이 있다. 이 관문을 뚫으면 하늘과 땅 사이를 홀로 걷는다. — 무문 혜개 『무문관』 자서(自序) 쉬운 풀이 책 이름이 『무문관(無門關)』 — '문 없는 관문'입니다. 말이 어긋난 것 같지요. 문이 없다면서 어떻게 관문이 있을까요. 무문 스님은 바로 그 어긋남을 첫 줄에 세워 두었습니다. 문이 없다는 말은, 들어가는 특별한 자격이나 비법이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에나 길이 있습니다(千差有路). 그런데 문이 없기에 오히려 어렵습니다. 밀고 들어갈 손잡이가 없으니까요. 우리는 늘 손잡이를 찾습니다. 어떤 자세, 어떤 호흡법, 어떤 스승 — 그 손잡이를 놓는 순간이 실은 관문을 지나는 순간입니다. '홀로 걷는다(獨步)'는 외롭다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의 말에도 기대지 않고 제 발로 선다는 뜻입니다. 오늘 화두를 들 때, 답을 아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거든 — 그 마음까지 그대로 두고 앉으십시오. 오늘의 명상 "어째서 없다고 했을까(無)?" 답을 찾지 말고, 물음만 품고 15분을 앉습니다. 풀리지 않는 채로 두는 것이 오늘의 공부입니다. The great way has no gate; a thousand different paths lead to it. Pass through this barrier and you walk alone between heaven and earth. The book is called the Gateless Barrier. It sounds like a contradiction: if there is no gate, how can there be a barrier? Wumen puts that contradiction in his very first line on purpose. "...

[먼데이 선명상] 말할 땐 알겠는데, 경계를 만나면 — 청허 『선가귀감』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말할 땐 알겠는데, 경계를 만나면 원문 學語之輩 說時似悟 對境還迷 말만 배운 무리는, 말할 때는 깨달은 듯하다가 경계를 만나면 도로 미혹해진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한불전 7, H0138) 쉬운 풀이 뜨끔한 구절입니다. 명상 책을 읽고 법문을 들을 때는 "아, 그렇지" 싶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에서 누가 발을 밟으면, 그 순간 읽은 것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청허 스님은 이것을 '말만 배운 무리(學語之輩)'라 부릅니다. 여기서 '경계(境)'란 대단한 시련이 아닙니다. 밥상 앞의 짜증, 카톡 하나에 요동치는 기분, 아이의 한마디 — 그런 사소한 자리가 다 경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가, 내 공부가 말에 머무는지 몸에 배었는지를 정직하게 알려 주는 시험지입니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낙담할 일이 아닙니다. 경계에서 흔들렸다는 것은, 어디를 더 익혀야 하는지 알려 준 것입니다. 월창거사도 『선학입문』에서 초심자에게 늘 이르기를, 아는 것보다 되풀이해 익히는 것이 먼저라 했습니다. 아는 것은 하루면 되지만, 배는 것은 세월이 듭니다. 오늘의 물음 어제 나를 가장 크게 흔든 '경계'는 무엇이었나요? 그 장면을 떠올리며, 그때 쉬지 못했던 숨을 지금 한 번 쉽니다. Those who have only learned the words seem awakened while they speak — and fall back into confusion the moment they meet an actual situation. A line that stings. Reading a book, hearing a talk — "ah, of course." Then someone steps on your foot in the subway and everything you read is gone. Hyujeong calls t...

[먼데이 선명상]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가 — 지눌 『수심결』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가 원문 若言心外有佛 性外有法 堅執此情 欲求佛道者 縱經塵劫 燒身煉臂 … 修種種苦行 如蒸沙作飯 只益自勞爾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 밖에 법이 있다 하여, 이 생각을 굳게 붙들고 불도를 구하려 한다면 — 티끌 같은 세월을 지나며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온갖 고행을 닦더라도, 마치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 다만 스스로 수고로울 뿐이다. — 지눌 『수심결』 (한불전 4, H0068) 쉬운 풀이 모래를 아무리 오래 쪄도 밥이 되지 않습니다. 재료가 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눌 스님이 무섭게 말하는 대목입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향이 어긋나 있으면 아무리 애써도 밥이 되지 않는다고요. 그럼 어긋난 방향이란 무엇일까요. "저기 어딘가에 진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 좋은 절, 더 뛰어난 스승, 더 긴 시간, 더 대단한 체험 — 그것을 얻어야 비로소 시작이라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밖으로 향한 마음은, 얻으면 또 다음 것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애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애쓰되, 밖에서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15분도 무언가를 얻으러 가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물음 나는 지금 무엇을 '얻으면' 제대로 시작될 거라고 미루고 있나요? 그것 없이, 오늘 그냥 앉아 봅니다. If you insist that Buddha is outside the mind and the Dharma outside your nature, and cling to that view while seeking the way — then though you pass aeons in austerities, it is like steaming sand to make rice: only your own toil increases. No matter how long you steam san...

[먼데이 선명상]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원문 一切分別 卽分別自心 心不見心 無相可得 모든 분별은 곧 제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니, 붙잡을 만한 모습이 없다. — 『대승기신론』 본문 (원효 『대승기신론소』가 풀이한 대목) 쉬운 풀이 명상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떻지?" 하고 마음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음이라는 물건은 잡히지 않습니다. 눈이 제 눈을 볼 수 없고, 칼이 제 칼날을 벨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이 우울하다", "내 마음이 산란하다" 할 때, 사실 그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모습을 마음이 다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원효 스님이 짚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그 미움을 미워하는 마음도, 모두 한 마음이 스스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러니 오늘 산란한 마음이 올라와도 그것과 싸우지 마세요. 붙잡을 모습이 없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 산란의 정체입니다. 그저 보고, 그저 두면, 그림은 스스로 흐려집니다. 오늘의 명상 한 생각이 올라오면 "이것도 내 마음이 그린 것"이라고 한 번만 알아차립니다. 없애려 하지 않고, 그다음 숨으로 돌아옵니다. All discrimination is the mind discriminating itself. Mind does not see mind; there is no mark that can be grasped. A moment comes in meditation when you turn and look: "What is my mind doing right now?" And strangely, however hard you look, there is no thing there to find. The eye cannot see itself; the...

[먼데이 선명상] 먼저 다섯 가지를 고른다 — 천태 『마하지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먼저 다섯 가지를 고른다 원문 一調食 二調眠 三調身 四調息 五調心 첫째는 먹는 것을 고르고, 둘째는 잠을 고르고, 셋째는 몸을 고르고, 넷째는 숨을 고르고, 다섯째는 마음을 고른다. — 천태 『마하지관』 卷四下, 스물다섯 가지 방편(二十五方便) 가운데 조오사(調五事) 쉬운 풀이 명상이 잘 안 되는 날, 우리는 대개 마음부터 탓합니다. 그런데 천태 스님은 마음을 맨 마지막에 두었습니다. 먼저 먹은 것, 잔 것, 앉은 자세, 그리고 숨 — 이 네 가지가 어긋나 있으면 마음은 아무리 다잡아도 흔들립니다. 너무 배부르면 몸이 무겁고, 너무 배고프면 마음이 들뜹니다. 잠이 모자라면 앉자마자 졸고, 너무 많이 자면 흐리멍덩합니다. 이 가르침의 요점은 하나입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알맞게. 거문고 줄처럼, 너무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수행은 방석에 앉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젯밤 무엇을 먹었는지, 몇 시에 누웠는지 — 거기서 이미 오늘 새벽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물음 다섯 가지 가운데 요즘 가장 어긋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그 하나만 조금 고쳐 봅니다. Attune five things: food, sleep, the body, the breath, and the mind. On days when meditation goes badly, we usually blame the mind first. Yet Zhiyi puts the mind last. Food, sleep, posture, breath — if these four are off, no amount of gripping will steady the mind. Too full and the body is heavy; too hungry and the mind is restless. Too little sleep and you doze the moment you ...

[먼데이 선명상] 선정에 드는 다섯 가지 마음 — 용수 『대지도론』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선정에 드는 다섯 가지 마음 원문 行五法 一者欲 二者精進 三者念 四者巧慧 五者一心 다섯 가지를 행한다. 첫째는 하고자 하는 마음(欲), 둘째는 꾸준히 나아감(精進), 셋째는 잊지 않고 새김(念), 넷째는 알맞게 하는 슬기(巧慧), 다섯째는 한 마음(一心)이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첫 선정에 드는 다섯 가지 법 쉬운 풀이 지난번에는 '버려야 할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지녀야 할 것' 다섯 가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첫째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저 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점입니다. 앉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면 문은 이미 열린 것입니다. 둘째 꾸준함, 셋째 잊지 않음까지는 누구나 짐작합니다. 그런데 넷째 '슬기(巧慧)'가 참 다정합니다. 무리하지 않고 알맞게 하는 눈치, 오늘 내 몸과 마음의 형편을 살펴 세기를 조절하는 지혜입니다. 수행은 이 악물고 버티는 일이 아니라, 나를 잘 다루는 일입니다. 다섯째가 '한 마음'입니다. 앞의 넷이 갖추어지면 마음은 저절로 한곳에 모입니다. 그러니 한 마음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입니다. 오늘 억지로 집중하려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의 명상 앉기 전에 다섯 가지 중 오늘 나에게 가장 약한 하나를 골라 봅니다. 그리고 그것 하나만 조용히 챙깁니다. 다섯을 다 하려 하지 않습니다. Five things to practice: aspiration, sustained effort, remembrance, skillful discernment, and one-pointedness of mind. Last time we looked at what to put down. Today it is the opposite — five things to pick up. What is striking is that the first is not some great abili...

[먼데이 선명상]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듯 원문 若子憶母 如母憶時 母子歷生 不相違遠 憶佛念佛 現前當來 必定見佛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하기를 어머니가 자식 생각하듯 한다면, 어머니와 자식은 여러 생을 지나도 서로 어긋나 멀어지지 않는다. 부처님을 억념하고 부처님을 염(念)하면, 지금이나 다가올 때에 반드시 부처님을 뵙는다. — 『능엄경』 「대세지보살 염불원통장」 (정토 문헌들이 널리 의지하는 대목. 허주 덕진 『정토감주』의 선정겸수 정신으로 읽는다) 쉬운 풀이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데는 노력이 들지 않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것, 그것이 그리움의 힘입니다. 염불이 바로 그런 마음이라고 이 경은 말합니다. 입으로 부르는 것은 시작일 뿐, 요체는 어머니 생각하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마음입니다. 허주 덕진 스님이 선과 염불을 둘로 보지 않은 까닭이 여기서 보입니다. 화두를 드는 것도 놓지 않는 마음이고, 부처님을 억념하는 것도 놓지 않는 마음입니다. 문이 둘일 뿐, 이어지는 마음은 하나입니다. 한 주를 마치는 오늘, '나무아미타불' 한 번을 그리운 이름 부르듯 불러 보세요. 소리보다 그리움이 앞서면, 그 한 번이 백 번보다 깊습니다. 오늘의 명상 숨을 들이쉬며 '나무', 내쉬며 '아미타불'. 열 번만, 어머니 생각하듯 천천히. 마지막 한 번은 소리 없이 마음으로만. If the child longs for the mother as the mother longs for the child, then through life after life they will never drift apart. Recollecting the Buddha, reciting the Buddha — now or in time to come, one will surely see the Buddha. A mother needs no effort to think of her ...

[먼데이 선명상] 있다 없다에 발 딛는 순간 — 『간화선 입문』(무문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있다 없다에 발 딛는 순간 원문 狗子佛性 全提正令 纔涉有無 喪身失命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물음은 바른 명령을 온전히 든 것이니, 있다 없다에 조금이라도 발을 딛는 순간 몸을 잃고 목숨을 잃는다. — 무문 혜개 『무문관』 제1칙 頌(송) ※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답했다. "무(無)!" 쉬운 풀이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예'나 '아니요'로 갈라서 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시험이 그렇게 가르쳤고, 세상이 그렇게 굴러갑니다. 그런데 무문 스님은 경고합니다. 이 '무(無)' 자에서만은, 있다 쪽에 서든 없다 쪽에 서든 발을 딛는 순간 끝장이라고. 화두는 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고르려는 그 버릇을 막아서는 벽이기 때문입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물음 앞에 서 있는 그 막막함 — 그것이 잘못된 상태가 아니라, 공부가 제대로 걸린 상태입니다. 이번 주말, 답이 안 나오는 일이 있거든 급히 '좋다·나쁘다'로 갈라 정리하지 말고, 갈라지지 않은 채로 하루만 품어 보세요. 무(無)를 드는 힘은 그렇게 길러집니다. 오늘의 물음 '있다'도 '없다'도 내려놓으면, 그 물음 앞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A dog's Buddha-nature" — the true command held up whole. Step onto "has" or "has not," and you lose body and life. We're trained to split every question into yes or no — exams taught us, the world runs on it. But Wumen warns: with this one word "M...

[먼데이 선명상] 뜬 이름을 좇느라 — 청허 『선가귀감』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뜬 이름을 좇느라 원문 貪世浮名 枉功勞形 營求世利 業火加薪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면 공연히 애만 쓰고 몸만 수고로우며, 세상의 이익을 좇아 구하면 업의 불길에 섶을 더할 뿐이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쉬운 풀이 '뜬 이름(浮名)'이라는 말이 뼈아픕니다. 물 위에 뜬 거품처럼, 잡으면 꺼지는 이름. 좋아요 숫자, 남들의 평가, "그 사람 대단하대"라는 소문 — 오백 년 전 스님의 말이 오늘 아침 휴대폰 화면과 이렇게 겹칩니다. 청허 스님은 그것이 나쁘다고 꾸짖기보다, 헛되이 수고롭다고 말합니다. 얻어도 허기지고, 얻을수록 불이 커지는 장사라는 것이지요. 몸과 마음의 힘은 정해져 있는데, 그 힘을 꺼지는 거품에 쓸 것인가, 꺼지지 않는 데 쓸 것인가 — 『선학입문』에서 월창거사가 공부의 첫걸음으로 뜻 세우기(立志)를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힘을 어디에 쓸지 먼저 정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한 일과 그저 옳아서 한 일을 하나씩만 세어 보세요. 어느 쪽이 저녁의 나를 덜 지치게 했는지도요. 오늘의 물음 지금 내가 애써 지키고 있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 이름을 아무도 불러 주지 않아도,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Craving the world's floating fame — effort wasted, body worn. Chasing the world's gain — kindling heaped on the fire of karma. "Floating fame" — the phrase stings. A name like foam on water, popping the moment you grasp it. Like-counts, others' verdicts, the rumor that "he's really something" — a...

[먼데이 선명상]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 지눌 『수심결』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갓난아이가 어른이 되기까지 원문 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갓난아이가 처음 태어난 날에도 눈·귀·코 같은 기관은 다 갖추어져 남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힘이 아직 차지 않았으니, 자못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지눌 『수심결』 (돈오 뒤에 점수가 필요한 까닭을 밝힌 비유) 쉬운 풀이 갓난아이에게 눈이 없습니까? 다 있습니다. 그런데 걷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라, 갖춘 힘이 아직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눌 스님은 깨달음과 닦음의 관계를 이 한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내 마음이 본래 부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문득 아는 일이 태어남이라면, 그 앎이 삶에서 힘을 쓰게 되기까지 기르는 일이 세월입니다. 태어났다고 어른이 아니듯, 알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꾸로 — 아직 어리다고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닙니다. 명상이 어떤 날은 되고 어떤 날은 안 되어도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넘어지며 걸음을 배우듯, 그것이 자라는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오늘의 물음 지금 내 수행은 몇 살쯤 되었을까요? 그 나이의 아이를 대하듯, 오늘은 나를 다그치지 말고 한 번 웃어 주세요. Like a newborn on the day of its birth: every faculty complete, no different from anyone else — yet its strength is not full. Only after years does it become an adult. Does a newborn lack eyes? It has everything. Yet it can neither walk nor speak — not because something is missing, but because what it has hasn't grown strong yet. Jinul shows the whol...

[먼데이 선명상] 물결이 일어도 물은 물 — 원효 『대승기신론소』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물결이 일어도 물은 물 원문 如大海水 因風波動 水相風相 不相捨離 而水非動性 若風止滅 動相則滅 濕性不壞故 큰 바닷물이 바람 때문에 물결로 일렁이면, 물의 모습과 바람의 모습이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물은 본래 움직이는 성품이 아니어서, 바람이 그치면 일렁임은 사라지되 젖은 성품은 무너지지 않는다. — 『대승기신론』 본문 (원효 『대승기신론소』가 풀이한 대목) 쉬운 풀이 화가 나거나 걱정이 밀려올 때, 우리는 "내 마음이 엉망이 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신론은 바다를 보라고 합니다. 폭풍이 몰아쳐 파도가 산더미 같아도, 물이 젖어 있다는 사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파도는 바람의 일이지, 물의 본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아무리 일렁여도, 그 일렁임 밑의 고요한 바탕은 다친 적이 없습니다. 원효 스님이 한 마음(一心)을 끝내 놓지 않은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번뇌는 손님처럼 왔다 가지만, 바탕은 주인처럼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 마음에 바람이 불거든 파도와 싸우지 말고, 한 번만 물어보세요. "물결 말고, 물은 지금 어떤가." 오늘의 명상 눈을 감고 마음을 바다라고 느껴 봅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파도라 부르고, 숨을 내쉴 때마다 파도 아래 잔잔한 물로 조금씩 내려가 봅니다. Like the great ocean stirred into waves by wind — water and wind cannot be pulled apart. Yet motion is not the water's nature: when the wind dies down the waves subside, while the wetness is never destroyed. When anger or worry sweeps in, we say "my mind is a mess." But the treat...

[먼데이 선명상] 앉아서도 걸으면서도 — 천태 『마하지관』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앉아서도 걸으면서도 원문 一常坐 二常行 三半行半坐 四非行非坐 첫째는 늘 앉아서 하는 것, 둘째는 늘 걸으며 하는 것, 셋째는 걷기와 앉기를 섞어 하는 것, 넷째는 걷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닌 채로 하는 것이다. — 천태 『마하지관』 卷二, 네 가지 삼매(四種三昧) 쉬운 풀이 명상이라 하면 우리는 가부좌 튼 모습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천태 스님은 수행의 모양을 네 가지나 열어 놓았습니다. 앉아서도 하고, 걸으면서도 하고, 섞어서도 하고 — 그리고 마지막 넷째가 놀랍습니다. '걷는 것도 앉는 것도 아닌' 수행, 곧 정해진 자세가 따로 없는 수행입니다. 넷째 문이 열리는 순간, 수행의 자리는 방석 위에서 삶 전체로 넓어집니다. 설거지하는 손끝, 버스를 기다리는 두 발, 잠들기 전의 한숨까지 — 마음이 깨어 있다면 그 자리가 모두 도량입니다. 그러니 오늘 15분을 앉지 못했다고 하루를 접지 마세요. 자세는 네 가지, 아니 그보다 많습니다. 깨어 있음은 하나입니다. 오늘의 물음 오늘 하루 중, 앉지 않고도 명상이 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요? 한 곳만 정해서, 그 순간에 숨을 한 번 깊이 쉬어 봅니다. Four kinds of samādhi: constantly sitting, constantly walking, half walking and half sitting, and neither walking nor sitting. Say "meditation" and we picture crossed legs. Yet Zhiyi opens four shapes of practice: sitting, walking, a mix of both — and the surprising fourth: "neither walking nor sitting," practice with no fixed posture at all. The moment that...

[먼데이 선명상] 믿음으로 들어가고 지혜로 건넌다 — 용수 『대지도론』

이미지
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믿음으로 들어가고 지혜로 건넌다 원문 佛法大海 信為能入 智為能度 부처님 법의 큰 바다는, 믿음으로 능히 들어가고 지혜로 능히 건넌다. — 용수 『대지도론』 권1 쉬운 풀이 바다에 들어가려면 먼저 물을 믿어야 합니다. "물이 나를 띄워 주겠지" 하는 믿음이 없으면 발끝도 담그지 못합니다. 수영법을 아무리 책으로 외워도, 믿고 몸을 맡기기 전에는 헤엄이 시작되지 않지요. 용수 스님은 공부의 순서를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은 믿음입니다. '내 마음도 고요해질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그다음이 지혜입니다. 믿고 들어간 뒤에, 직접 헤엄치며 몸으로 아는 것 — 그것이 바다를 건너는 힘입니다. 믿음만 있고 건너지 않으면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이고, 믿음 없이 지혜만 따지면 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15분은, 일단 들어가 보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세 번 숨을 고르고, 속으로 한 번만 말해 봅니다. "이 시간이 나를 띄워 줄 것이다." 그리고 판단 없이, 물에 몸을 맡기듯 호흡에 몸을 맡겨 봅니다. The great ocean of the Buddha's teaching: by faith one enters it, by wisdom one crosses it. To enter the sea, you first have to trust the water. Without the trust that "the water will hold me," you never get past dipping a toe. You can memorize every swimming manual, but swimming only begins when you trust and let go. Nāgārjuna gives the order of practice: first, faith — the sim...

[먼데이 선명상]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새기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이미지
念佛者 在口曰誦 在心曰念 徒誦失念 於道無益 염불이란, 입에 있으면 '외움(誦)'이요 마음에 있으면 '생각함(念)'이니, 한갓 입으로만 외고 마음의 새김을 잃으면 도에 이익이 없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염불 대목 (허주 덕진 『정토감주』의 선정겸수 정신이 잇고 있는 가르침) To recite the Buddha's name: on the lips it is chanting; held in the heart it is true remembrance. Chanting alone, with the heart's remembrance lost, brings no benefit on the way. "나무아미타불" 한 마디에도 두 층이 있습니다. 입이 하는 소리와, 마음이 하는 새김. 소리는 몸을 모아 주고, 새김은 마음을 모아 줍니다. 소리만 남고 새김이 빠지면, 그것은 부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내는 일이 됩니다. Even one "Namu Amitabul" has two layers: the sound the lips make, and the remembering the heart does. Sound gathers the body; remembrance gathers the mind. Sound without remembrance is not calling the Buddha — only making noise. 조선 후기의 허주 덕진 스님은 『정토감주』에서 선(禪)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마음을 다해 부르는 한 마디는 그대로 선정이고, 화두를 들 때의 그 간절함과 염불할 때의 그 한결같음은 같은 마음의 두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온 마음이 거기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Hŏju Tŏkchin's Chŏngt'o kamju shows that Sŏn and Buddha-recollection are not t...

[먼데이 선명상]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 『간화선 입문』(무문관)

이미지
如呑了箇熱鐵丸相似 吐又吐不出 蕩盡從前惡知惡覺 久久純熟 自然內外打成一片 마치 뜨거운 쇠구슬을 삼킨 것과 같아서, 뱉으려 해도 뱉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앎과 잘못된 깨달음을 모두 씻어 버리고, 오래오래 익어 가면 저절로 안과 밖이 한 조각을 이룬다. — 무문 혜개 『무문관』 제1칙 조주무자 평창 It is like having swallowed a red-hot iron ball — you try to spit it out, but it will not come out. Wash away all your old cleverness and false awakenings; ripen long, and of itself, inside and outside become one piece. 지난주 우리는 온몸으로 의심덩어리를 일으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문 스님은 이어서, 그렇게 품은 화두가 어떤 느낌인지 알려 줍니다. 뜨거운 쇠구슬 —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는 것. 답이 나오지 않는데 놓아지지도 않는, 그 답답함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바로 공부가 되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Wumen tells us what a held-up hwadu actually feels like: a red-hot iron ball — impossible to swallow down, impossible to spit out. That stuckness, with no answer coming and no letting go, is not failure. It is the sign that the work is working. 우리는 답답하면 빨리 답을 검색하고, 안 되면 그만둡니다. 화두 공부는 반대입니다. 뱉지 말고 품고 있으라고 합니다. '오래오래 익어 가면(久久純熟)' — 억지로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과일이 익듯 저절로 익는다는 이 말이, 조급한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입니다. When stuck, we search for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