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선명상] 집 안의 보물창고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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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안의 보물창고 — 家有寶藏 譬如貧人,家有寶藏而無知者,知識示之,即得知也。 비유하면 가난한 사람이 집에 보물창고를 두고도 알지 못하다가, 선지식이 가리켜 보이면 곧 알게 되는 것과 같다. — 천태 지의 설, 『마하지관』 卷1上 (大正藏 T46 No.1911, CBETA 대조) 쉬운 풀이 없던 보물이 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본래 집에 있던 보물을, 몰랐다가 알게 될 뿐. 수행이 그와 같다고 천태 스님은 말합니다. 부족한 나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이미 넉넉한 나를 확인하는 일. 오늘 앉는 자리는 무언가를 벌러 가는 자리가 아니라, 제 집 창고 문을 여는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이미 있다"고 가만히 되뇌며 앉아 봅니다. 얻으려는 마음이 올라오면, 창고는 이미 집 안에 있음을 한 호흡 기억해 보세요. English "Like a poor man with a treasure-store at home who does not know it — when a good friend points, he knows." — Zhiyi, Mohe Zhiguan fasc. 1 (T46 No.1911, verified against CBETA) No new treasure appears; the treasure was always in the house — only now it is known. Practice is like that: not filling a lacking self, but confirming an already-ample one. Today's sitting is not going out to earn; it is opening the door of your own storehouse. Sit, quietly repeating "already here." When wanting arises, remember for one breath: the store is already in...

[먼데이 선명상] 숲에 앉은 편안함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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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에 앉은 편안함 — 我得甘露味 我得甘露味,安樂坐林間;恩愛之眾生,為之起慈心。 나는 감로의 맛을 얻어 숲 사이에 편안히 앉았노라. 은애(恩愛)에 매인 중생들, 그들을 위해 자비심을 일으키노라. —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 — 마왕의 세 딸의 물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답하심 (大正藏 T25 No.1509, CBETA 대조) 쉬운 풀이 마왕의 세 딸이 홀로 앉은 세존을 조롱하며 물었습니다. "큰 보배를 잃은 사람처럼, 무엇을 구해 여기 앉아 있는가?" 세존의 답은 구하는 자의 말이 아니라 이미 얻은 자의 말이었어요. 나는 감로의 맛을 얻어 편안히 앉아 있노라. 그리고 그 편안함은 홀로 그치지 않고 곧장 자비심으로 흘러넘칩니다. 잘 앉은 고요는 나를 쉬게 하고, 그다음엔 반드시 곁으로 흐릅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지금 이 자리에 이미 있는 편안함 한 조각을 찾아봅니다. 찾았다면, 그것이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흘러가게 한 호흡 두어 보세요. English "I have tasted the nectar; at ease I sit in the forest. For beings bound by affection, I give rise to a loving heart." — the Buddha's verse reply to Māra's three daughters,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T25 No.1509, verified against CBETA) Mocking the solitary Buddha, they asked: "Like one who has lost a great treasure — what do you seek, sitting here?" His answer is not a seeker's but a finder's: I have tasted the nectar, and sit at ease. And tha...

[먼데이 선명상]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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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원문 若眾生心,憶佛念佛,現前當來,必定見佛,去佛不遠;不假方便,自得心開。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지금이거나 앞날이거나 반드시 부처님을 뵙게 되어 부처님과 멀지 않으니, 다른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열립니다. — 『능엄경』 대세지염불원통장 (T19 No.945, p.128b)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의 소의 경문 쉬운 풀이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自得心開)" — 이 다섯 글자가 오늘의 전부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대단한 도구가 없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리워하고, 다만 부르는 것. 그 단순한 일이 그대로 길이 됩니다. 꽃봉오리를 손으로 벌려서 피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볕을 쬐면 때가 되어 저절로 벌어집니다. 염불이란 마음을 볕에 내어놓는 일 — 열리는 것은, 저절로의 몫입니다. 오늘의 명상 나직이 한 번, "나무아미타불" — 열어야 한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다만 부릅니다. 벌어지는 일은 봉오리에게 맡겨 두고. If beings remember the Buddha and recollect the Buddha, now or in time to come they will surely see the Buddha and never be far from him; without borrowing any other means, the heart opens of itself. — Śūraṅgama Sūtra, chapter on Mahāsthāmaprāpta's perfect penetration (the scriptural basis of Deokjin's Jeongto gamju) "The heart opens of itself" — these five characters are the whole of today. No special...

[먼데이 선명상]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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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원문 六祖因風颺剎幡,有二僧對論。一云幡動,一云風動。往復曾未契理。祖云:不是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二僧悚然。 바람에 깃발이 나부끼는데 두 스님이 다투었습니다.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고,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며 오가도 이치에 닿지 못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말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두 스님이 흠칫 놀랐습니다. —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 (T48 No.2005, p.296c) 쉬운 풀이 바람인가, 깃발인가. 둘 다 그럴듯해서 다툼은 끝나지 않습니다. 육조 스님은 심판을 보는 대신, 다투는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통째로 돌려세웁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 그대들의 마음이라고.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바쁜 날, 정작 나부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깃발을 잠재울 수는 없어도, 이 물음 앞에서는 잠시 고요해집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시비를 가리고 싶어지는 순간, 바깥의 깃발 대신 나부끼는 이 마음을 한 번 봅니다. 바람 탓도, 깃발 탓도 잠시 내려놓고. The wind was flapping a temple flag, and two monks were arguing: one said the flag moved, the other said the wind moved. Back and forth, they never touched the truth. The Sixth Patriarch said, "It is not the wind that moves; it is not the flag that moves; it is your mind that moves." The two monks were struck with awe. — The Gateless Gate, Case 29 Win...

[먼데이 선명상]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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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원문 此事如蚊子上鐵牛。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 등에 올라앉은 것과 같습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37a)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모기가 무쇠 소의 등에 앉았습니다. 침이 들어갈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란 그런 것이라고, 서산 스님은 말합니다. 이상한 격려입니다. "쉽다, 금방 된다"가 아니라 — 뚫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안 뚫린다고 물러날 일도, 조바심 낼 일도 없습니다. 잴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재는 마음이 먼저 쉬어 갑니다. 되고 안 되고를 놓아 버린 자리에서, 공부는 비로소 온몸의 일이 됩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되고 안 되고를 재지 않는 일 하나를 해 봅니다. 잘되어 가는지 묻지 않는 숨 한 번, 걸음 한 번. 무쇠 소 등에 앉은 모기처럼 — 다만 앉아 있어 봅니다. This matter is like a mosquito on an iron ox.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A mosquito lands on the back of an iron ox. Its needle cannot possibly go in. And yet, Seosan says, practice is like this. A strange encouragement — not "it's easy, you'll get it soon," but: of course it does not pierce. So there is no reason to retreat, and none to fret. Before something that cannot be measured, the measuring mind is the first to rest. Where success and failure are set do...

[먼데이 선명상]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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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원문 悟後長須照察,妄念忽起,都不隨之,損之又損,以至無爲。⋯ 天下善知識,悟後牧牛行是也。 깨친 뒤에도 늘 비추어 살펴, 망념이 문득 일어나도 도무지 따라가지 않고, 덜고 또 덜어 함이 없음(無爲)에 이릅니다. ⋯ 천하 선지식의 깨친 뒤 소 먹이는 행(牧牛行)이 이것입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11b) 쉬운 풀이 "알았다!" 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그다음은 소를 먹이는 시간입니다. 갓 길들인 소는 틈만 나면 남의 밭으로 들어갑니다. 소치는 사람은 화내지 않습니다. 고삐를 당겨 데려올 뿐, 매일, 천천히. 그러다 어느 날 고삐가 필요 없어집니다. 쌓아 올리는 공부가 아니라 덜어 내는 공부. 하나 알았다고 끝이 아니고, 백 번 데려온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 느린 길을 지눌 스님은 목우행이라 불렀습니다. 스스로를 목우자(牧牛子) — 소 치는 사람이라 이름하면서. 오늘의 명상 오늘 몇 번이든 마음이 남의 밭에 들어가거든, 화내지 않고 고삐를 당겨 봅니다. 덜고, 또 덜고. 서두르지 않는 소걸음으로. After awakening, keep watch: when deluded thoughts arise, do not follow them; lessen and lessen again, until you arrive at effortlessness... This is the ox-herding practice of all good teachers after awakening.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The moment of "I see!" is not the end, Jinul says. What follows is the time of tending the ox. A newly tamed ox slips into the ne...

[먼데이 선명상] 안에서 부르는 소리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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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안에서 부르는 소리 원문 以有真如法故,能熏習無明。以熏習因緣力故,則令妄心厭生死苦,樂求涅槃。⋯ 自信己性。 진여(眞如)의 법이 있기에 무명(無明)을 훈습(熏習)합니다. 그 훈습하는 인연의 힘으로, 망령된 마음도 나고 죽는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게 됩니다. ⋯ 그리하여 스스로 제 성품을 믿게 됩니다. — 『대승기신론』 (T32 No.1666, p.578b)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뱁니다. 훈습이란 그런 것 — 곁에 있는 것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신론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 안의 참된 성품이, 어리석음 쪽으로 늘 스며들고 있다고. "이렇게 사는 게 다일까" 하는 그 마음, 고요한 것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 바로 안에서 배어 나온 향내라고. 구도심은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안에서 부르고 있던 소리에, 어느 날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문득 고요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가만히 느껴 봅니다. 밖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이미 부르고 있었습니다. Because the true nature is present, it perfumes ignorance; by the power of this perfuming, even the deluded mind comes to weary of suffering and gladly seek nirvana... and so comes to trust its own nature.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Paper that wraps incense takes on its fragrance — that is "perfuming": what is near seeps in. And the Awaken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