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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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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원문 若眾生心,憶佛念佛,現前當來,必定見佛,去佛不遠;不假方便,自得心開。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을 생각하면, 지금이거나 앞날이거나 반드시 부처님을 뵙게 되어 부처님과 멀지 않으니, 다른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이 열립니다. — 『능엄경』 대세지염불원통장 (T19 No.945, p.128b)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의 소의 경문 쉬운 풀이 "저절로 마음이 열린다(自得心開)" — 이 다섯 글자가 오늘의 전부입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대단한 도구가 없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그리워하고, 다만 부르는 것. 그 단순한 일이 그대로 길이 됩니다. 꽃봉오리를 손으로 벌려서 피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볕을 쬐면 때가 되어 저절로 벌어집니다. 염불이란 마음을 볕에 내어놓는 일 — 열리는 것은, 저절로의 몫입니다. 오늘의 명상 나직이 한 번, "나무아미타불" — 열어야 한다는 마음도 내려놓고, 다만 부릅니다. 벌어지는 일은 봉오리에게 맡겨 두고. If beings remember the Buddha and recollect the Buddha, now or in time to come they will surely see the Buddha and never be far from him; without borrowing any other means, the heart opens of itself. — Śūraṅgama Sūtra, chapter on Mahāsthāmaprāpta's perfect penetration (the scriptural basis of Deokjin's Jeongto gamju) "The heart opens of itself" — these five characters are the whole of today. No special...

[먼데이 선명상]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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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바람도 깃발도 아니고 원문 六祖因風颺剎幡,有二僧對論。一云幡動,一云風動。往復曾未契理。祖云:不是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二僧悚然。 바람에 깃발이 나부끼는데 두 스님이 다투었습니다.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하고,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하며 오가도 이치에 닿지 못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말했습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두 스님이 흠칫 놀랐습니다. — 『무문관』 제29칙 비풍비번 (T48 No.2005, p.296c) 쉬운 풀이 바람인가, 깃발인가. 둘 다 그럴듯해서 다툼은 끝나지 않습니다. 육조 스님은 심판을 보는 대신, 다투는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통째로 돌려세웁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 그대들의 마음이라고.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바쁜 날, 정작 나부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깃발을 잠재울 수는 없어도, 이 물음 앞에서는 잠시 고요해집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시비를 가리고 싶어지는 순간, 바깥의 깃발 대신 나부끼는 이 마음을 한 번 봅니다. 바람 탓도, 깃발 탓도 잠시 내려놓고. The wind was flapping a temple flag, and two monks were arguing: one said the flag moved, the other said the wind moved. Back and forth, they never touched the truth. The Sixth Patriarch said, "It is not the wind that moves; it is not the flag that moves; it is your mind that moves." The two monks were struck with awe. — The Gateless Gate, Case 29 Win...

[먼데이 선명상]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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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모기가 무쇠 소에 앉아 원문 此事如蚊子上鐵牛。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 소 등에 올라앉은 것과 같습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37a)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모기가 무쇠 소의 등에 앉았습니다. 침이 들어갈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공부란 그런 것이라고, 서산 스님은 말합니다. 이상한 격려입니다. "쉽다, 금방 된다"가 아니라 — 뚫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안 뚫린다고 물러날 일도, 조바심 낼 일도 없습니다. 잴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재는 마음이 먼저 쉬어 갑니다. 되고 안 되고를 놓아 버린 자리에서, 공부는 비로소 온몸의 일이 됩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되고 안 되고를 재지 않는 일 하나를 해 봅니다. 잘되어 가는지 묻지 않는 숨 한 번, 걸음 한 번. 무쇠 소 등에 앉은 모기처럼 — 다만 앉아 있어 봅니다. This matter is like a mosquito on an iron ox.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A mosquito lands on the back of an iron ox. Its needle cannot possibly go in. And yet, Seosan says, practice is like this. A strange encouragement — not "it's easy, you'll get it soon," but: of course it does not pierce. So there is no reason to retreat, and none to fret. Before something that cannot be measured, the measuring mind is the first to rest. Where success and failure are set do...

[먼데이 선명상]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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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깨친 뒤에 소를 먹이듯 원문 悟後長須照察,妄念忽起,都不隨之,損之又損,以至無爲。⋯ 天下善知識,悟後牧牛行是也。 깨친 뒤에도 늘 비추어 살펴, 망념이 문득 일어나도 도무지 따라가지 않고, 덜고 또 덜어 함이 없음(無爲)에 이릅니다. ⋯ 천하 선지식의 깨친 뒤 소 먹이는 행(牧牛行)이 이것입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11b) 쉬운 풀이 "알았다!" 하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그다음은 소를 먹이는 시간입니다. 갓 길들인 소는 틈만 나면 남의 밭으로 들어갑니다. 소치는 사람은 화내지 않습니다. 고삐를 당겨 데려올 뿐, 매일, 천천히. 그러다 어느 날 고삐가 필요 없어집니다. 쌓아 올리는 공부가 아니라 덜어 내는 공부. 하나 알았다고 끝이 아니고, 백 번 데려온다고 부끄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 느린 길을 지눌 스님은 목우행이라 불렀습니다. 스스로를 목우자(牧牛子) — 소 치는 사람이라 이름하면서. 오늘의 명상 오늘 몇 번이든 마음이 남의 밭에 들어가거든, 화내지 않고 고삐를 당겨 봅니다. 덜고, 또 덜고. 서두르지 않는 소걸음으로. After awakening, keep watch: when deluded thoughts arise, do not follow them; lessen and lessen again, until you arrive at effortlessness... This is the ox-herding practice of all good teachers after awakening.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The moment of "I see!" is not the end, Jinul says. What follows is the time of tending the ox. A newly tamed ox slips into the ne...

[먼데이 선명상] 안에서 부르는 소리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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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안에서 부르는 소리 원문 以有真如法故,能熏習無明。以熏習因緣力故,則令妄心厭生死苦,樂求涅槃。⋯ 自信己性。 진여(眞如)의 법이 있기에 무명(無明)을 훈습(熏習)합니다. 그 훈습하는 인연의 힘으로, 망령된 마음도 나고 죽는 괴로움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게 됩니다. ⋯ 그리하여 스스로 제 성품을 믿게 됩니다. — 『대승기신론』 (T32 No.1666, p.578b)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향을 싼 종이에는 향내가 뱁니다. 훈습이란 그런 것 — 곁에 있는 것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기신론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 안의 참된 성품이, 어리석음 쪽으로 늘 스며들고 있다고. "이렇게 사는 게 다일까" 하는 그 마음, 고요한 것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 — 바로 안에서 배어 나온 향내라고. 구도심은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안에서 부르고 있던 소리에, 어느 날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문득 고요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지 가만히 느껴 봅니다. 밖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이미 부르고 있었습니다. Because the true nature is present, it perfumes ignorance; by the power of this perfuming, even the deluded mind comes to weary of suffering and gladly seek nirvana... and so comes to trust its own nature.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Paper that wraps incense takes on its fragrance — that is "perfuming": what is near seeps in. And the Awakening ...

[먼데이 선명상] 마음 놓을 자리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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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마음 놓을 자리 원문 善巧安心者,善以止觀安於法性也。 마음을 잘 놓는다는 것은, 멈춤(止)과 봄(觀)으로써 마음을 법성(法性) — 본래 그러한 자리 — 에 편안히 놓는 것입니다. — 천태 『마하지관』 권5 (T46 No.1911, p.56b) 쉬운 풀이 "마음을 편히 놓으라"는 말은 많은데,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아무도 일러 주지 않습니다. 천태 스님의 답은 뜻밖에 단순합니다. 법성 —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본래 그러한 자리.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마음에도 본래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멈추어(止) 바람을 재우고, 보아서(觀) 그 자리를 알아차립니다. 놓는 곳이 따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애쓰기 이전의 자리, 지금 이대로의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듯, 마음을 한 번 내려놓아 봅니다. 어디에? — 지금 이대로의 자리에. 내려놓은 뒤의 고요를, 잠시 맛봅니다. To skillfully settle the mind is to settle it, by means of calming and contemplation, upon the nature of things as they are. — Zhiyi, The Great Calming and Contemplation, fasc. 5 "Put your mind at ease," everyone says — but no one tells us where to put it. Zhiyi's answer is unexpectedly simple: upon the dharma-nature, the place that is so without being made so. As water returns downhill, the mind too has a place it originally returns to. Calming stills the wind; contemplat...

[먼데이 선명상]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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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원문 亂心輕飄,甚於鴻毛;馳散不停,駛過疾風;不可制止,劇於獼猴;暫現轉滅,甚於掣電。 어지러운 마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나부끼고, 쉼 없이 내달리는 것이 세찬 바람보다 빠르며, 붙들기 어렵기가 원숭이보다 심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가 번개보다 급합니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T25 No.1509, p.180c) 쉬운 풀이 이천 년 전 사람의 마음도 이랬습니다. 깃털처럼 팔랑이고, 바람처럼 내달리고, 원숭이처럼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다니는 마음. 그러니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할까" 하고 자신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본래 그런 결을 가졌다고, 용수 스님은 먼저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날뛰는 원숭이를 혼내서 재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줄 뿐입니다. 선(禪)이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몇 번이고 달아나거든, "또 갔구나" 하고 빙긋 웃어 봅니다. 원숭이를 붙잡는 대신,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줍니다. 숨 한 번 — 그 자리면 충분합니다. The scattered mind flutters lighter than a goose feather, races faster than a gale, is harder to hold than a monkey, appears and vanishes quicker than lightning. — Nāgārjuna, Treatise on the Great Perfection of Wisdom, fasc. 17 Minds were like this two thousand years ago, too — fluttering like feathers, racing like wind, leaping branch to branch like a monkey. So there is no need to scold yourself ...

[먼데이 선명상]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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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원문 禪淨何甞歧二,修證究竟歸一者也。 선(禪)과 정토(淨土)가 언제 둘로 갈린 적 있었던가. 닦음과 증득은 끝내 하나로 돌아갑니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서문 (韓佛全 H0288 · X62 No.1202, 649a) 쉬운 풀이 참선하는 사람과 염불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덕진 스님은 서문 첫머리에서 조용히 되묻습니다 — 그 둘이 언제 갈라진 적이 있었느냐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는 일과,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모으는 일. 문은 달라 보여도, 들어서면 같은 방입니다. 내 방식만 옳다고 붙잡는 마음이 오히려 길을 둘로 가릅니다. 길은 본래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고요히, 또는 나직이 "나무아미타불" — 오늘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같은 방에 닿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When were Seon and Pure Land ever split in two? Practice and realization return, in the end, to one. — Heoju Deokjin, Preface to the Jeongto gamju They say meditators and chanters walk different roads. But Deokjin quietly asks back, at the very opening of his book: when were the two ever divided? Sitting still and watching the mind, or gathering the mind on the Buddha's name — the doors look different, but they open into the same room. It is the grip of "only my way" that splits the road...

[먼데이 선명상] 발우나 씻게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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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발우나 씻게 원문 趙州因僧問:某甲乍入叢林,乞師指示。州云:喫粥了也未?僧云:喫粥了也。州云:洗鉢盂去。其僧有省。 한 스님이 조주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갓 들어왔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죽은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럼 발우나 씻게." 그 스님이 문득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 (T48 No.2005, p.293c) 쉬운 풀이 특별한 가르침을 기다리던 스님에게 조주 스님은 아침 설거지를 가리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도(道)가 죽 먹고 발우 씻는 일 바깥에 따로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거창한 것을 찾는 동안, 손안의 일은 늘 시시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시시한 일 하나를 온전히 하는 것 — 거기서 그 스님은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오늘의 명상 오늘 아침 밥그릇을 씻을 때, 그 일 하나만 해 봅니다. 물소리, 그릇의 매끈함, 손끝의 온기. 다른 데를 찾지 않는 손이,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A monk said to Zhaozhou, "I have just entered the monastery. Please instruct me." Zhaozhou asked, "Have you eaten your rice porridge?" "I have." "Then go wash your bowl." At that, the monk understood. — The Gateless Gate, Case 7 To a monk waiting for something special, Zhaozhou points at the morning dishes. This is no joke: if the Way existed apart from eating porridge and wash...

[먼데이 선명상]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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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원문 凡夫取境,道人取心。心境兩忘,乃是眞法。 범부는 경계를 붙잡고, 도인은 마음을 붙잡습니다.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으면, 그것이 참 법입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43b)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좋은 일이 생기면 좋아지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무너집니다. 바깥 것을 붙잡고 사는 마음은 늘 바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방향을 바꿉니다. 바깥이 아니라, 흔들리는 이 마음을 봅니다. 그런데 서산 스님은 한 걸음 더 갑니다 — 마음마저 붙잡지 말라고. 붙잡을 것이 다 놓일 때, 참 법은 이미 거기 있다고. 붙잡지 않는 손은, 빈손이 아니라 자유로운 손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흔든 것을 탓하기 전에 흔들리는 마음을 한 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바라봄마저,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 Ordinary people grasp at circumstances; practitioners grasp at mind. When both mind and circumstances are forgotten — that is the true Dharma.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Good news lifts us, harsh words topple us — a mind that lives grasping the outside is always busy. The practitioner turns around and watches the shaken mind instead. But Seosan goes one step further: do not grasp even the mind. When all grasping is set down, the true Dharma is already there. An ungrasping hand is not empty — ...

[먼데이 선명상] 한 생각, 빛을 돌이켜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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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한 생각, 빛을 돌이켜 원문 忽被善知識指示入路,一念廻光,見自本性。⋯ 無漏智性,本自具足,卽與諸佛,分毫不殊。 문득 선지식이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주면,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봅니다. ⋯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09c) 쉬운 풀이 우리는 하루 종일 밖을 봅니다. 좋은 것, 싫은 것, 해야 할 것. 눈부신 손전등을 늘 바깥으로만 비추고 있는 셈입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그 빛을 한 번, 안으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보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듣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찾아 헤매던 것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털끝만큼도 모자라지 않게. 오늘의 명상 창밖을 보다가, 문득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은 누구인가. 답을 만들지 않고, 그 물음 곁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When a good teacher points the way in, in a single thought the light turns around and one sees one's own nature... The untainted wisdom-nature is originally complete in itself, differing from all the Buddhas by not a hair's breadth.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All day we shine our flashlight outward — things to like, to dislike, to do. Turning the light around means letting it face inward, once: what is this that sees? What is...

[먼데이 선명상]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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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원문 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 心若馳散,即當攝來,住於正念。 멈춤(止)을 닦는 이는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 뜻을 바르게 합니다. ⋯ 마음이 내달려 흩어지면, 곧 거두어 와 바른 생각에 머물게 합니다. —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 (T32 No.1666, p.582a)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방법이 참 단순합니다. 고요한 자리. 바른 자세. 그리고 마음이 달아나면 — 다시 데려오는 것. 혼내지 않고 데려옵니다. 강아지가 마당을 뛰쳐나가면 조용히 데려오듯이. 백 번 나가면 백 번 데려옵니다. 그 데려오는 일이 실패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몸이 먼저입니다. 바르게 앉는 것만으로 마음은 벌써 반쯤 돌아와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한 번 세워 봅니다. 마음이 어느새 딴 데 가 있다면 — 잘 보았습니다.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데려옵니다. 그뿐입니다. One who practices calming dwells in a quiet place, sits upright, and sets the mind aright... If the mind runs and scatters, gather it back and let it rest in right mindfulness.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The method is simple: a quiet seat, an upright posture, and — when the mind runs off — bringing it back. Not scolding, just bringing it back, the way you would quietly fetch a puppy that ran into the yard. A hundred times out, a hundre...

[먼데이 선명상] 이미 부처, 아직 길 위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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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이미 부처, 아직 길 위 원문 若無信,高推聖境,非己智分;若無智,起增上慢,謂己均佛。 믿음이 없으면 성인의 경지를 저 높이 밀어 두고 "내 몫이 아니다" 하고, 지혜가 없으면 우쭐한 마음을 일으켜 "내가 이미 부처와 같다" 합니다. — 천태 『마하지관』 권1 (T46 No.1911, p.10b) 쉬운 풀이 천태 스님은 두 가지 헛디딤을 말합니다. 하나는 "부처는 나와 상관없는 먼 이야기"라며 밀어 두는 것. 또 하나는 "나는 이미 다 되었다"며 우쭐해지는 것. 믿음은 말합니다 — 당신은 본래 그 자리에 있다고. 지혜는 말합니다 — 그래도 길은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미 부처이면서, 아직 길 위에 있습니다. 이 둘은 싸우지 않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앉는 일이, 꼭 그렇습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아침, 두 마음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이대로 괜찮다"는 마음과, "그래도 한 걸음 걷는다"는 마음. 둘 사이 어디쯤에서, 숨 한 번 쉬어 봅니다. Without faith, one pushes the sage's realm far away, saying "not my share"; without wisdom, one grows conceited, saying "I am already equal to the Buddha." — Zhiyi, The Great Calming and Contemplation, fasc. 1 Two missteps: pushing awakening far away as someone else's story, or puffing up as if the walk were already finished. Faith says — you are originally there. Wisdom says — and still,...

[먼데이 선명상] 바람 속 등불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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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바람 속 등불 원문 實智慧從一心禪定生。譬如然燈,燈雖能照,在大風中不能為用;若置之密宇,其用乃全。 참 지혜는 한마음의 선정에서 납니다. 등불을 켠 것과 같으니, 등불이 비출 수 있어도 큰 바람 속에서는 제 구실을 못 하고, 바람 없는 방에 두면 그 쓰임이 온전합니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T25 No.1509, p.180c) 쉬운 풀이 등불이 어두운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흔들 뿐입니다. 우리 안의 밝음도 그렇습니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켜져 있습니다. 다만 하루 종일 부는 바람 — 서두름, 걱정, 이런저런 소리 — 속에서는 그 빛이 제대로 비추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고요히 앉습니다.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등불을 바람 없는 방에 옮겨 두는 일입니다. 그러면 빛은, 저절로 온전해집니다. 오늘의 명상 잠시 바람 없는 방이 되어 봅니다. 허리를 바로 하고 앉아, 숨이 드나드는 것을 그저 지켜봅니다. 빛을 만들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람이 잦아들면, 이미 밝습니다. True wisdom is born from the stillness of one mind. A lamp, though it can shine, is of little use in a great wind; placed in a sheltered room, its light becomes whole. — Nāgārjuna, Treatise on the Great Perfection of Wisdom, fasc. 17 The lamp is not dark — the wind is only shaking it. The brightness in us does not need to be made; it is already lit. Sitting quietly is simply moving the lamp into a windless room. Then the light become...

[먼데이 선명상] 선은 금강 갑옷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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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은 금강 갑옷 — 禪為金剛鎧 禪為金剛鎧,能遮煩惱箭;雖未得無餘,涅槃分已得。 선(禪)은 금강 갑옷이라, 번뇌의 화살을 막아 준다; 아직 완전한 열반은 얻지 못했어도, 열반의 몫은 이미 얻은 것이다. — 용수 『대지도론』 卷17 「선바라밀(禪波羅蜜)」 (大正藏 T25 No.1509, CBETA 대조) 쉬운 풀이 몇 주 전 '선은 지혜를 지키는 곳간, 맑은 물'이라는 게송을 보았지요. 오늘은 그 게송의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 이번엔 갑옷이에요. 화살을 되쏘는 무기가 아니라, 그저 막아 주는 갑옷. 번뇌와 싸워 이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고요히 앉아 있는 그 자리가 이미 갑옷이어서, 날아오던 화살이 힘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뒤 구절이 참 다정해요. 아직 다 이루지 못했어도, 그 몫은 이미 받았다고요. 오늘 앉은 이 한 자리가 모자란 연습이 아니라, 이미 받은 몫입니다. 오늘의 명상 잠깐 앉아, 몸이 갑옷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고 느껴 봅니다. 무엇과 싸우지 말고, 지켜지고 있음을 한 호흡 느껴 보세요. English "Dhyāna is armor of diamond — it wards off the arrows of affliction; though the final rest is not yet won, its share is already gained." — Nāgārjuna, Mahāprajñāpāramitāśāstra, ch. 17 on the Dhyāna Pāramitā (T25 No.1509, verified against CBETA) Weeks ago we read that dhyāna is a treasury guarding wisdom, clear water. Today, the very next lines of that same verse. This time: armor. Not a weapon that shoots back — just armor that shields. It doesn'...

[먼데이 선명상]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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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淨土紺珠)』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念佛者是誰 원문 念佛者是誰 염불하는 이는 누구인가. — 참구염불(參究念佛)의 화두 — 허주 덕진 『정토감주』(H0288)가 잇는 선정겸수(禪淨兼修)의 자리 쉬운 풀이 지난 주까지 선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여러 갈래로 보았지요. 오늘은 그 둘이 실제로 한 자리에서 만나는 오랜 공부법을 소개합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다가, 문득 되묻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부르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소리는 밖으로 나가는데, 이 물음은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 순간 염불이 그대로 화두가 되어요. 부르는 입과 듣는 귀와 묻는 마음이 한 자리에서 만납니다. 답을 찾으라는 게 아니에요. 물음이 돌아오는 그 자리에 잠깐 서 보는 것만으로, 부르던 부처가 밖에 있지 않다는 것이 슬며시 드러납니다. 그리고 회향(廻向). 이 한 주의 작은 모음을 나 혼자 갖지 않고, 곁의 한 사람에게 가만히 돌려 비춥니다. 오늘의 명상 천천히 '나무아미타불'을 세 번 부릅니다. 그리고 가만히 — 방금 부른 이는 누구인가, 한 번만 물어봅니다. 답하지 말고, 물음이 돌아온 그 자리에서 한 호흡. 마지막에, 이 고요를 떠오르는 한 사람에게 보내 주세요. "Who is it that recites the Buddha's name?" — the hwadu of inquiring recitation (chamgu yeombul), the meeting place of Seon and Pure Land carried on by Heoju Deokjin's Jeongto Gamju (H0288) In past weeks we saw, from several sides, that Seon and recitation are not two. Today, the old practice where they actually meet in one place: ...

[먼데이 선명상] 다만 스스로 알 뿐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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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다만 스스로 알 뿐 — 如啞子得夢 원문 如啞子得夢 只許自知 驀然打發 驚天動地 마치 말 못 하는 이가 꿈을 꾼 것 같아서, 다만 스스로 알 뿐이다. 그러다 문득 터져 나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인다. — 무문 혜개, 『무문관(無門關)』 제1칙 평창 (大正藏 T48), 『간화선 입문』이 다루는 참구법 쉬운 풀이 무자 화두를 온몸으로 품고 익어 가면 어떤 상태가 되는가. 무문 스님의 답이 재미있어요. 말 못 하는 이가 꿈을 꾼 것 같다고. 분명히 생생한데, 남에게 말로 전할 길이 없고, 다만 스스로 알 뿐이라고요. 보여 주고 알리는 일에 바쁜 요즘, 이 말이 오히려 시원합니다. 이 공부는 자랑할 수도, 비교할 수도, 점수 매길 수도 없어요. 인증할 수 없어서 초라한 게 아니라, 인증이 필요 없어서 온전히 내 것입니다. 남이 몰라줘도 조금도 줄지 않는 것 — 그런 것을 하나 품고 사는 사람은 든든합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좋았던 한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다만 스스로만 알아 봅니다. 남이 몰라도 줄지 않는 그 맛을 한 호흡 간직해 보세요. "It is like a mute who has had a dream — he alone knows it. Then, suddenly bursting forth, it startles heaven and shakes the earth." — Wumen Huikai, commentary on Case 1 of The Gateless Gate What is it like when the word "No" has been carried in the whole body and ripened? Wumen's answer is striking: like a mute who has had a dream — vivid beyond doubt, yet with no way to tell it, known...

[먼데이 선명상] 닭이 알을 품듯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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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닭이 알을 품듯 — 如雞抱卵 원문 工夫如雞抱卵 如猫捕鼠 如飢思食 如渴思水 如兒憶母 必有透徹之期 공부는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주린 이가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듯 하면, 반드시 사무쳐 뚫리는 때가 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禪家龜鑑)』 (韓佛全 7, H0138) 쉬운 풀이 공부하는 마음의 다섯 그림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다섯 다 '이를 악물고 애쓰는' 그림이 아니에요. 닭은 알을 조이지 않고 그저 품습니다. 주린 이는 밥 생각을 애써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하지요.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요. 다 힘이 아니라 간절함의 그림, 다그침이 아니라 품음의 그림입니다. '반드시 뚫리는 때가 있다'는 말도 시험 합격 같은 약속이라기보다, 품는 이의 마음가짐이에요. 알이 언제 깨어날지 닭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만 따뜻함이 떠나지 않게 할 뿐. 배경으로 함께 읽는 월창거사 『선학입문』도 이 간절하고 담담한 공부길을 안내합니다. 오늘의 명상 요즘 마음에 품고 있는 물음 하나를 떠올립니다. 오늘은 그것을 풀려고 하지 말고, 알을 품듯 그냥 따뜻하게 품고만 있어 봅니다. 한 호흡, 온기가 떠나지 않게. "Practice is like a hen brooding on her egg, like a cat watching a mousehole, like the hungry thinking of food, like the thirsty thinking of water, like a child longing for its mother — then there will surely come a time of breaking through." — Cheongheo Hyujeong, Mirror of the Seon School Five pictures of the practi...

[먼데이 선명상] 얼음이 녹듯, 서두르지 않고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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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보조 지눌 『수심결(修心訣)』 얼음이 녹듯, 서두르지 않고 — 識冰池而全水 원문 識冰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即佛 資法力以熏修 얼음 언 연못이 온전히 물인 줄 알아도 햇볕을 빌려 녹이듯,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아도 법의 힘을 빌려 익혀 간다. — 지눌 『수심결(修心訣)』 (韓佛全 4, H0068) 쉬운 풀이 꽁꽁 언 연못을 봅니다. 이것이 얼음이 아니라 온전히 물이라는 것 — 아는 데는 한순간이면 됩니다. 그런데 아는 순간 얼음이 곧바로 다 녹던가요? 햇볕을 받으며 녹는 시간이 따로 흐릅니다. 지눌 스님은 우리 마음공부가 꼭 이렇다고 말해요. 내가 본래 부처라는 걸 문득 알아도, 몸에 밴 버릇이 녹는 데는 볕 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비유가 다정한 건, 양쪽 모두를 괜찮다고 해 주기 때문이에요. 아직 얼음 같아 보여도 이미 물이니 괜찮고, 알고 나서도 더디 녹는 것 역시 원래 그런 것이니 괜찮습니다. 조급해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오늘의 명상 빨리 바뀌지 않는 내 모습 하나를 떠올립니다. 그것을 얼음 깨듯 다그치지 말고, 볕에 내어놓은 얼음처럼 그냥 두어 봅니다. 이미 물이라는 것만 기억하며, 한 호흡. "Knowing the frozen pond is entirely water, one borrows the sun's warmth to melt it; awakening to the fact that an ordinary person is Buddha, one relies on the Dharma's power to steep and cultivate."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Look at a pond frozen solid. To know it is not ice but entirely water takes only an instant. But does the ice all melt the moment you know? ...

[먼데이 선명상] 왜 '한 마음'이라 하는가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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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왜 '한 마음'이라 하는가 — 性自神解 원문 何為一心 謂染淨諸法其性無二 真妄二門不得有異 故名為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為心 무엇을 한 마음(一心)이라 하는가? 물든 법과 맑은 법이 그 성품이 둘이 아니요, 참됨과 거짓의 두 문도 다를 수 없으니, 그래서 '하나(一)'라 한다. 이 둘 없는 자리는 온갖 법 가운데 실다워서, 텅 빈 허공과는 같지 않고 성품이 스스로 신령히 아니, 그래서 '마음(心)'이라 한다. — 원효 『대승기신론소』 (大正藏 T44) 쉬운 풀이 앞서 한 마음에 두 문이 있다는 것을 보았지요. 오늘은 원효 스님이 스스로 묻고 답합니다. 도대체 왜 '한 마음'이라 부르는가. 답은 두 글자에 나누어 들어 있어요. 좋은 마음과 나쁜 마음, 맑은 날과 흐린 날이 알고 보면 성품이 둘이 아니라서 '하나(一)'. 그리고 그 자리가 텅 빈 허공 같은 게 아니라 스스로 신령하게 알고 있어서 '마음(心)'. 그러니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을 도려내야 하나가 되는 게 아닙니다. 이미 둘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하나는 멍한 공백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환히 알고 있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에 좋은 생각이 오면 '하나', 미운 생각이 와도 '하나'라고 가만히 속삭여 봅니다. 나누어 밀어내지 말고, 둘 다 한 마음의 일렁임임을 한 호흡 지켜보세요. "What is the one mind? The defiled and the pure are not two in nature, and the gates of true and deluded cannot differ — hence 'one.' This place without two is real amid all things; unlike empty space, it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