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선명상] 입으로 외고 마음으로 새기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먼데이 선명상 일요일 표지 — 허주 덕진 정토감주

念佛者 在口曰誦 在心曰念 徒誦失念 於道無益

염불이란, 입에 있으면 '외움(誦)'이요 마음에 있으면 '생각함(念)'이니, 한갓 입으로만 외고 마음의 새김을 잃으면 도에 이익이 없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염불 대목 (허주 덕진 『정토감주』의 선정겸수 정신이 잇고 있는 가르침)

To recite the Buddha's name: on the lips it is chanting; held in the heart it is true remembrance. Chanting alone, with the heart's remembrance lost, brings no benefit on the way.

"나무아미타불" 한 마디에도 두 층이 있습니다. 입이 하는 소리와, 마음이 하는 새김. 소리는 몸을 모아 주고, 새김은 마음을 모아 줍니다. 소리만 남고 새김이 빠지면, 그것은 부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리를 내는 일이 됩니다.

Even one "Namu Amitabul" has two layers: the sound the lips make, and the remembering the heart does. Sound gathers the body; remembrance gathers the mind. Sound without remembrance is not calling the Buddha — only making noise.

조선 후기의 허주 덕진 스님은 『정토감주』에서 선(禪)과 염불이 둘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마음을 다해 부르는 한 마디는 그대로 선정이고, 화두를 들 때의 그 간절함과 염불할 때의 그 한결같음은 같은 마음의 두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온 마음이 거기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Hŏju Tŏkchin's Chŏngt'o kamju shows that Sŏn and Buddha-recollection are not two: one wholehearted invocation is itself meditative absorption. The urgency of holding a hwadu and the constancy of reciting the name are two names for one mind. What matters is not which you do — but whether the whole mind is there.

오늘의 명상

오늘 어떤 말이든 한 마디를 골라 — 인사도 좋고, 염불도 좋습니다 — 입과 마음이 함께 있는 채로 말해 보세요.

Choose one utterance today — a greeting, or the Buddha's name — and say it with lips and heart in the same place.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먼데이 선명상] 고요하면서 늘 비추는 — 천태 『마하지관』 한 구절

[먼데이 선명상] 다섯 덮개를 내려놓으면 — 용수 『대지도론』

[먼데이 선명상] 먼저 다섯 가지를 고른다 — 천태 『마하지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