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선명상] 마음 놓을 자리 — 천태 『마하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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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화요일 새벽 5시 화요일 — 천태 『마하지관』 마음 놓을 자리 원문 善巧安心者,善以止觀安於法性也。 마음을 잘 놓는다는 것은, 멈춤(止)과 봄(觀)으로써 마음을 법성(法性) — 본래 그러한 자리 — 에 편안히 놓는 것입니다. — 천태 『마하지관』 권5 (T46 No.1911, p.56b) 쉬운 풀이 "마음을 편히 놓으라"는 말은 많은데, 어디에 놓아야 할지는 아무도 일러 주지 않습니다. 천태 스님의 답은 뜻밖에 단순합니다. 법성 — 억지로 만들지 않아도 본래 그러한 자리.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마음에도 본래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멈추어(止) 바람을 재우고, 보아서(觀) 그 자리를 알아차립니다. 놓는 곳이 따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애쓰기 이전의 자리, 지금 이대로의 자리입니다. 오늘의 명상 무거운 짐을 바닥에 내려놓듯, 마음을 한 번 내려놓아 봅니다. 어디에? — 지금 이대로의 자리에. 내려놓은 뒤의 고요를, 잠시 맛봅니다. To skillfully settle the mind is to settle it, by means of calming and contemplation, upon the nature of things as they are. — Zhiyi, The Great Calming and Contemplation, fasc. 5 "Put your mind at ease," everyone says — but no one tells us where to put it. Zhiyi's answer is unexpectedly simple: upon the dharma-nature, the place that is so without being made so. As water returns downhill, the mind too has a place it originally returns to. Calming stills the wind; contemplat...

[먼데이 선명상]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 용수 『대지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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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월요일 새벽 5시 월요일 — 용수 『대지도론』 원숭이보다 날랜 마음 원문 亂心輕飄,甚於鴻毛;馳散不停,駛過疾風;不可制止,劇於獼猴;暫現轉滅,甚於掣電。 어지러운 마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나부끼고, 쉼 없이 내달리는 것이 세찬 바람보다 빠르며, 붙들기 어렵기가 원숭이보다 심하고,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기가 번개보다 급합니다. — 용수 『대지도론』 권17 「선바라밀」 (T25 No.1509, p.180c) 쉬운 풀이 이천 년 전 사람의 마음도 이랬습니다. 깃털처럼 팔랑이고, 바람처럼 내달리고, 원숭이처럼 이 가지 저 가지로 뛰어다니는 마음. 그러니 "나는 왜 이렇게 산만할까" 하고 자신을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본래 그런 결을 가졌다고, 용수 스님은 먼저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날뛰는 원숭이를 혼내서 재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줄 뿐입니다. 선(禪)이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몇 번이고 달아나거든, "또 갔구나" 하고 빙긋 웃어 봅니다. 원숭이를 붙잡는 대신, 앉을 자리를 하나 내어 줍니다. 숨 한 번 — 그 자리면 충분합니다. The scattered mind flutters lighter than a goose feather, races faster than a gale, is harder to hold than a monkey, appears and vanishes quicker than lightning. — Nāgārjuna, Treatise on the Great Perfection of Wisdom, fasc. 17 Minds were like this two thousand years ago, too — fluttering like feathers, racing like wind, leaping branch to branch like a monkey. So there is no need to scold yourself ...

[먼데이 선명상]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 허주 덕진 『정토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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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일요일 새벽 5시 일요일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선과 정토가 언제 둘이었나 원문 禪淨何甞歧二,修證究竟歸一者也。 선(禪)과 정토(淨土)가 언제 둘로 갈린 적 있었던가. 닦음과 증득은 끝내 하나로 돌아갑니다. — 허주 덕진 『정토감주』 서문 (韓佛全 H0288 · X62 No.1202, 649a) 쉬운 풀이 참선하는 사람과 염불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덕진 스님은 서문 첫머리에서 조용히 되묻습니다 — 그 둘이 언제 갈라진 적이 있었느냐고.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는 일과, 부처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모으는 일. 문은 달라 보여도, 들어서면 같은 방입니다. 내 방식만 옳다고 붙잡는 마음이 오히려 길을 둘로 가릅니다. 길은 본래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아서 고요히, 또는 나직이 "나무아미타불" — 오늘은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든, 같은 방에 닿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When were Seon and Pure Land ever split in two? Practice and realization return, in the end, to one. — Heoju Deokjin, Preface to the Jeongto gamju They say meditators and chanters walk different roads. But Deokjin quietly asks back, at the very opening of his book: when were the two ever divided? Sitting still and watching the mind, or gathering the mind on the Buddha's name — the doors look different, but they open into the same room. It is the grip of "only my way" that splits the road...

[먼데이 선명상] 발우나 씻게 — 『간화선 입문』(무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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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토요일 새벽 5시 토요일 — 『간화선 입문』(무문관) 발우나 씻게 원문 趙州因僧問:某甲乍入叢林,乞師指示。州云:喫粥了也未?僧云:喫粥了也。州云:洗鉢盂去。其僧有省。 한 스님이 조주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제가 갓 들어왔습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죽은 먹었는가?" "먹었습니다." "그럼 발우나 씻게." 그 스님이 문득 깨친 바가 있었습니다. — 『무문관』 제7칙 조주세발 (T48 No.2005, p.293c) 쉬운 풀이 특별한 가르침을 기다리던 스님에게 조주 스님은 아침 설거지를 가리킵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도(道)가 죽 먹고 발우 씻는 일 바깥에 따로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거창한 것을 찾는 동안, 손안의 일은 늘 시시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시시한 일 하나를 온전히 하는 것 — 거기서 그 스님은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오늘의 명상 오늘 아침 밥그릇을 씻을 때, 그 일 하나만 해 봅니다. 물소리, 그릇의 매끈함, 손끝의 온기. 다른 데를 찾지 않는 손이, 이미 도착해 있습니다. A monk said to Zhaozhou, "I have just entered the monastery. Please instruct me." Zhaozhou asked, "Have you eaten your rice porridge?" "I have." "Then go wash your bowl." At that, the monk understood. — The Gateless Gate, Case 7 To a monk waiting for something special, Zhaozhou points at the morning dishes. This is no joke: if the Way existed apart from eating porridge and wash...

[먼데이 선명상]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 청허 『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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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금요일 새벽 5시 금요일 — 청허 『선가귀감』 경계가 아니라 마음을 원문 凡夫取境,道人取心。心境兩忘,乃是眞法。 범부는 경계를 붙잡고, 도인은 마음을 붙잡습니다. 마음과 경계를 둘 다 잊으면, 그것이 참 법입니다. — 청허 휴정 『선가귀감』 (韓佛全 7, H0138, 643b) · 월창거사 『선학입문』 참조 쉬운 풀이 좋은 일이 생기면 좋아지고, 싫은 소리를 들으면 무너집니다. 바깥 것을 붙잡고 사는 마음은 늘 바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방향을 바꿉니다. 바깥이 아니라, 흔들리는 이 마음을 봅니다. 그런데 서산 스님은 한 걸음 더 갑니다 — 마음마저 붙잡지 말라고. 붙잡을 것이 다 놓일 때, 참 법은 이미 거기 있다고. 붙잡지 않는 손은, 빈손이 아니라 자유로운 손입니다. 오늘의 명상 오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흔든 것을 탓하기 전에 흔들리는 마음을 한 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바라봄마저,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 Ordinary people grasp at circumstances; practitioners grasp at mind. When both mind and circumstances are forgotten — that is the true Dharma. — Cheongheo Hyujeong, The Mirror of Seon Good news lifts us, harsh words topple us — a mind that lives grasping the outside is always busy. The practitioner turns around and watches the shaken mind instead. But Seosan goes one step further: do not grasp even the mind. When all grasping is set down, the true Dharma is already there. An ungrasping hand is not empty — ...

[먼데이 선명상] 한 생각, 빛을 돌이켜 — 지눌 『수심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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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목요일 새벽 5시 목요일 — 지눌 『수심결』 한 생각, 빛을 돌이켜 원문 忽被善知識指示入路,一念廻光,見自本性。⋯ 無漏智性,本自具足,卽與諸佛,分毫不殊。 문득 선지식이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주면, 한 생각에 빛을 돌이켜 제 본성을 봅니다. ⋯ 번뇌 없는 지혜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습니다. — 지눌 『수심결』 (韓佛全 4, H0068, 709c) 쉬운 풀이 우리는 하루 종일 밖을 봅니다. 좋은 것, 싫은 것, 해야 할 것. 눈부신 손전등을 늘 바깥으로만 비추고 있는 셈입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 — 그 빛을 한 번, 안으로 돌이키는 일입니다. 보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듣고 있는 이것은 무엇인가. 멀리 갈 것이 없습니다. 찾아 헤매던 것이, 찾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지눌 스님은 말합니다. 털끝만큼도 모자라지 않게. 오늘의 명상 창밖을 보다가, 문득 방향을 바꾸어 봅니다. 지금 보고 있는 이것은 누구인가. 답을 만들지 않고, 그 물음 곁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When a good teacher points the way in, in a single thought the light turns around and one sees one's own nature... The untainted wisdom-nature is originally complete in itself, differing from all the Buddhas by not a hair's breadth. — Jinul, Secrets on Cultivating the Mind All day we shine our flashlight outward — things to like, to dislike, to do. Turning the light around means letting it face inward, once: what is this that sees? What is...

[먼데이 선명상]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 원효 『대승기신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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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데이 선명상 · 수요일 새벽 5시 수요일 — 원효 『대승기신론소』 고요한 곳에 바르게 앉아 원문 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 心若馳散,即當攝來,住於正念。 멈춤(止)을 닦는 이는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 뜻을 바르게 합니다. ⋯ 마음이 내달려 흩어지면, 곧 거두어 와 바른 생각에 머물게 합니다. — 『대승기신론』 수행신심분 (T32 No.1666, p.582a) · 원효 『대승기신론소』(T44) 쉬운 풀이 방법이 참 단순합니다. 고요한 자리. 바른 자세. 그리고 마음이 달아나면 — 다시 데려오는 것. 혼내지 않고 데려옵니다. 강아지가 마당을 뛰쳐나가면 조용히 데려오듯이. 백 번 나가면 백 번 데려옵니다. 그 데려오는 일이 실패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몸이 먼저입니다. 바르게 앉는 것만으로 마음은 벌써 반쯤 돌아와 있습니다. 오늘의 명상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한 번 세워 봅니다. 마음이 어느새 딴 데 가 있다면 — 잘 보았습니다.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데려옵니다. 그뿐입니다. One who practices calming dwells in a quiet place, sits upright, and sets the mind aright... If the mind runs and scatters, gather it back and let it rest in right mindfulness. — Awakening of Faith in the Mahāyāna, with Wonhyo's commentary The method is simple: a quiet seat, an upright posture, and — when the mind runs off — bringing it back. Not scolding, just bringing it back, the way you would quietly fetch a puppy that ran into the yard. A hundred times out, a hundre...